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구경거리다.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레이의 연습은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였다. 물론 나도 그 수많은 구경꾼들 중 하나였고. 복도 쪽으로 나있는 창문을 에워싼 무리들의 웅성임을 뚫고 강의실에 들어가자 '아돌프 아당'의 '지젤'중 '패전트'에 맞춰 춤추고 있는 강렬한 눈빛의 레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연기인지, 증오인지 모를 레이의 눈빛을 보며 짧게 손인사를 했다. 곧게 뻗은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는 발끝. 높이 날아오르며 그랑 주떼를 하는 레이의 시선이 아직도 나에게 있다. 나는 레이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구석자리에 앉아 플리에 할 때까지 넋을 놓고 동작을 유심히 관찰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체중이 늘어나진 않을까 언제나 관리하고, 하루 종일 학원에서, 그리고 집에선 동영상을 보며 연습했다. 누군가 나에게 왜 발레를 하느냐 묻는다면, 뭔가 그럴듯하게 거창한 이유쯤이야 얼마든지 댈 수 있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내가 왜 발레를 하고 있는지. 그냥 정신 차려보니 나는 발레에 파묻혀있었다. 시작은 엄마에게서부터 였을지 몰라도, 그 꿈은 곧 나의 꿈이 되었고, 어느새 엄마의 열정은 나의 열정이라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있는 모든 예비 발레리노가 그렇듯. 아마 이곳에 모인 모든 이가 나와 비슷한 성장과정과, 생각으로 발레리노를 꿈꾸며 모여있겠지만 레이는 확실히 나와는, 또 그들과는 달랐다. 레이의 손짓 하나, 동작 하나, 시선을 주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이곳에 모여있는 아이들과는 확연히 실력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살리에르의 심정이 이랬을까?"
막 연습을 끝낸 레이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허탈한 목소리로 말하자 레이는 동작을 멈추고 웃음을 터트렸다.
"감히 살리에르? 연습이나 더 해라."
레이가 농담 식으로 던진 말에 나는 수긍하며 웃음을 터트렸지만 연습실에 있던 모든 살리에르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눈치채지 못한 레이는 땀방울들을 닦아내자마자 다시 연습을 위해 거울 앞에 섰고, 그제야 느껴지는 따가운 살리에르들의 눈총에 잠시 주춤하더니 결국 수많은 시선들을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어찌나 재빨랐는지, 나는 레이가 없어진 것도 알지 못한 채 수많은 살리에르들과 웃고 떠들 뿐이었다.
소란스러움은 다시 울려 퍼지는 '패전트'에 일사불란하게 학생들을 끌어당겼다. 레이가 없는 연습실에서 나는 방금 전 레이가 보여준 연기를 떠올리다 레이가 연습실이 없음을 알아챘다. 아마 지금 함께 연습을 하고 있는 친구들 모두 레이의 연기를 따라 하지만, 이곳에 레이가 없음을 의식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더욱 열정에 불이 지펴지듯 서서히 열이 오르는 몸에 땀방울들이 맺히고, 그것들로 범벅이 되고 나서야 음악은 끝이난다. 모두 같은 동작으로 끝을 맺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희열을 느끼며 레이도 함께였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나온 후에야 학교의 모든 불이 소등이 되고, 아직 땀이 가시지 않은 살에 차가운 공기가 닿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