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콘스탄체가 되고 싶은 마음이야.
역에 도착하자 편의점에서 나오는 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모차르트 납셨다"
함께 있던 동기 중 한 녀석은 얼굴이 굳어져 비아냥거리고, 함께 있던 동기들도 키득거리며 맞장구를 치며 턱으로 레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 재수 없지 않냐?"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녀석은 나에게 동의를 구하듯 툭툭 쳤다. 여전히 아니꼬운 눈빛으로 레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고개를 돌렸다. 레이는 잰걸음으로 기둥 뒤로 숨듯이 모습을 감췄다.
"왜? 레이 멋있잖아."
나의 말에 동기들은 썩은 음식이라도 먹은마냥 표정들이 일그러졌다. 연습실에서만에도 모두 레이가 보여줬던 동작들을 따라 하기에 바빴던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너도 게이냐?"
녀석들에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때마침 역을 집어삼킬 듯 굉음을 내며 들어오는 열차에 균형감각을 잡으려는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들이 빠져나온다. 뒤를 이어 우르르 몰려타는 녀석들에게 나는 끝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받아본 적도,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본적도 없던 질문이었다. 내가 게이냐고? 그런 건 어떻게 알게 되는 거지? 녀석들을 실은 열차는 다시 문을 닫고 굉장한 소리를 내며 다음 역을 항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고요한 틈을 타 나의 마음은 뭐가 얹힌 듯 찝찝함이 올라왔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이미 떠난 기차의 뒤꽁무니를 멀뚱히 쫓았다.
"오늘은 정말 긴 하루였어."
언제 왔는지 모를 레이는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살리에르의 피나는 노력을 모차르트도 봤어야 하는데."
방금 전까지의 찝찝함은 숨기고,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은 레이에게 가볍게 장난이나 칠 생각으로 저녁에 있던 연습에 대해 말할 생각이었다. 덕분에 다들 자극받아 끝내주는 연습을 마쳤노라고. 하지만 어쩐지 나의 말에 레이는 기분이 더 상한 듯 보였다.
"모차르트도, 살리에르도 필요 없어. 차라리 콘스탄체가 되고 싶은 마음이야."
단념한듯한 말투에는 진한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레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다시금 찝찝함이 올라오며 입 안 가득 흙을 머금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콘스탄체? 하지만... 모차르트는 난봉꾼이잖아."
농담을 해명하기는커녕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사이에서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를 떠올리는 레이의 속내가 궁금했다.
"그래도 사랑받을 수 있잖아."
한층 더 깊어진 쓸쓸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레이가 안쓰러워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나오는 말은 고작 자신감을 가져. 뿐이었다. 더. 필요한 말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레이의 재능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눈 온다."
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다.
"어, 진짜네."
아주 약한 눈발에 손을 들어 올리고 눈이 잡히길 기다리는 동안 두 번째 열차가 들어왔다.
"넌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촉이 그래."
레이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곧 문이 닫힌다는 방송을 하고 있는 열차 문을 사이에 두고 문 밖에서 나는 멍하게 레이를 쳐다봤다. 두꺼운 점퍼로 온몸을 꽁꽁 싸매 눈만 겨우 보이는 정도였다. 아스라이 공기를 떠 다니는 가벼운 눈송이가 나의 콧등을 간지럽히며 앉아 허무하도록 빠르게 녹아내렸다. 나는 한 발자국도 땔 수 없었다. 천천히 문이 닫히고,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열차까지 그냥 보내고 말았다. 텅 빈 지하철 플랫폼 맞은편에선 어떤 아주머니가 예쁘장하게 생긴 자신의 딸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낯선 사람 쫓아가면 안 돼. 알았지?"
"응."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있던 낯선 할머니는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과자 사줄 테니까 할머니랑 같이 갈래?"
그러자 여자아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응!"
나는 콧등에서 녹아 액체가 된 눈을 쓸어내리고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