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울게 내버려 둬.
자유 연습이 한창이던 시간, 제각각 자신의 공간을 확보해 춤추는 녀석들 사이로 레이는 한참 유행이 지난 가요를 흥얼거리며 연습실을 헤매고 있었다. 연습에 방해되지 않도록 얇은 몸을 최대한 활용해 요리조리 피해 연습실 구석에 도착한 레이는 자신의 휴대폰에서 재생되고 있는 노래를 멈추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두 팔로 무릎을 감싸안았다. 잠깐 동안 연습하고 연습하고 있는 동기들을 보는듯하더니 이내 자신의 무릎 안으로 머리를 묻었다. 왜소한 몸집이 한 층 더 왜소해 보였다.
"아이씨."
삭막해진 분위기에 돌아보니,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동그랗게 말려있는 레이에게 동기 녀석은 굉장히 화가 나있었다. 평소에도 레이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던 녀석이었다. 연습을 하던 도중 앉아있던 레이에게 발이 걸려 넘어진 듯 보였다.
"연습 안 할 거면 나가던가. 왜 여기서 걸리적거려?"
대꾸도 안 하는 레이에게 녀석은 점점 더 흥분해서 레이의 머리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아, 이 새끼 울어!!"
경멸의 시선으로 레이를 바라보는 녀석은 모든 사람이 들으라는 듯 소리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다시 레이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아무도 연습을 이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은 울고 있는 레이의 사정을 아는 것이 더 재밌다고 판단을 했겠지. 나는 미간 사이가 찌푸려졌다.
"하지 마."
녀석에게 다가가 레이의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던 손을 내쳤다. 녀석은 당황하더니 이내 씨익 웃어 보였다.
"왜? 애인이 당하고 있으니까 못 봐주겠어?"
당황한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런 사이 아니야."
녀석은 나의 말투를 따라 하며 조롱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상황을 어쩔 줄 몰라 당황한 기색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낼 뿐이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절규하듯 소리쳤다.
"나 좀 울게 내버려 둬."
연습실에 있던 녀석들은 하나 둘 연습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중엔 소중한 연습을 방해받아 언짢은 표정도 있었고, 재밌는 구경은 다 끝났다는 듯 아쉬움이 묻어나는 얼굴도, 그리고 그냥 레이가 싫은 녀석들은 다 들리도록 별 유난을 떤다. 수석이면 다야? 라는 말을 하며 터벅터벅 연습실을 나갔다. 아무도 레이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모두는 레이에게 냉정했다. 홀로 레이와 남겨진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레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난 언제나 비굴해야지만 사람을 얻을 수 있어. 너는 모르지?"
얼굴이 눈물에 범벅되어 일어난 레이는 양 손으로 무자비하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리고서 저벅저벅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진짜 홀로 남겨진 텅 빈 연습실에서 나는 무엇을 했어야 옳았을까? 레이를 조롱하던 녀석들을 찾아가 확실하게 한 마디 해주는 것? 아니면 그대로 레이를 따라나서 무슨 이야기라도 들어주는 것? 내가 했던 선택은 그저 우두커니 텅 빈 연습실에 남아 벙져있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더 이상 레이를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