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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Aug 26. 2018

죽음을 팝니다.

제 2의 저승사자



생각보다 죽음의 선택지는 쉽게 노출되어 있지. 장의사였던 그 사람은 돈을 목적으로 ‘고통 없이 죽는 법, 100% 확실한 자살’이라는 문구로 광고를 내고,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모집하기 시작해,
자칭 저승사자라는 사람은 구속되었지만, 여전히 유사한 방법으로 유사한 세트가 판매되고 있다 해도 놀라울 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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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을 팝니다. (죽음을 담보로)’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얼마 전 나는 SNS를 돌아다니다 자해 사진과 함께 죽음을 예견하는 글을 보고 걱정이 되어 댓글을 달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지만 그냥 지나가 달라는 답글이 달렸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게시자의 페이지에 들어가니 죽음, 우울 자해 기타등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우울을 판다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결국 그 페이지는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사람을 모으는것이었다.
번뜩 나는 100만 원짜리 자살 세트를 팔던 저승사자가 생각이 났다.
사실 나는 SNS를 잘 하는 사람도, 잘 활용하는 사람도 아니다. 사회적인 이슈에 매 순간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내가 기사를 보게되는 시간에 접하게 된 뉴스들을 알게 될 뿐이다.
그러다 몇 해 전 ‘자살 세트’ 관련된 뉴스를 보게 되었고 당시엔 꽤나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받은 충격이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소설을 쓰게 했고, 쓰면서도 생각보다 더 많이 머뭇거리고, 고민하는 시간이 매 순간 늘어 갔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이 문제에 고민이 많다.
그런데 아직도 너무 쉽게 노출되어있는 저승사자의 잔해라니...
지금 SNS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세대는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와는 상관없은 일이라 그냥 넘어갈지, 함께 우울을 팔고 죽음을 동조하는데 참여할지, 혹은 그것을 이용해 농락할 구상을 하는지, 아니면 상품화 시켜 돈을 벌 생각을 하는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는 단지 쓰는것만으로도 부담스럽고 무섭다.
혹시라도 어느 관점의 해석이라는것이 부축이는 꼴이 될까, 과연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문제인가도.
그럼에도 나는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제 2의 저승사자에게 묻고 싶었다.
우울을 파는 행위의 영향과 파급력을 인지하고 있는지, 또 본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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