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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Oct 31. 2018

너머의 존재

개인의 기호와 선택


계속되는 연결도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시간은 공간 위로 붕 떠버린다.
손톱을 깨물며 멍하니 기대 있는 수의 얼굴엔 초초함도 없다.

-
얼마 전 수평선을 바라보다 문득,
저 너머에 무언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배움을 통해 당연히 알게되는 지식이 없던 시절엔 과학적인 입증이 가능해도 벌을 받던 시기가 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누구도 몰랐기에 의문을 갖게 되고, 그런 제도가 있었기에 반박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당시에 내가 태어났다면 수평선 너머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냥 저기가 끝이구나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를일이다. 어떤 사고를 하느냐에 따라 알게되고 모르게되는 일들이 많은것처럼 말이다.
‘끝’ 이라는것도.
누구는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말하기도 하고, 끝은 그냥 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사고를 한다는 것은 호기심이 많기도 하지만 미련이 많다고 해석이 가능할것 같다.
희망으로 가득한 시작에도 끝은 보이기 마련이다.
한 번 보이기 시작한 끝의 모습은 애써 무시하려해도 계속해서 모습을 나타낸다.
단호하게 보이는 끝을 향해 걸어갈지, 길을 늘려 끝의 거리를 멀어지게 할지는
그 끝을 마주하는 개인의 기호이고, 선택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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