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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Feb 20. 2018

동성

레이가 그곳에 있다.



  나는 레이를 찾기 위한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레이의 일기장. 이것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단서임을 깨닫고 일기장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일기장을 읽으며 레이가 얼마나 고독에 잠식되어왔는가, 자기비난에 얼마큼이나 괴로워했는가를 체감하며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고, 유난히 별에 대한 내용이 많음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레이는 별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일기장을 탁 소리 나도록 덮어놓고는 대단한 발견이나 한 마냥 문득 스치듯 나에게 했던 레이의 말이 떠올랐다.
  '산 꼭대기가 평지인 곳이 있는데, 밤에 가면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위로 별이 쏟아진대. 그 말을 들었을 때 부터 나는 그곳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정신없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그곳이 어딘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오래된 기억만으로 그곳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시 일기장을 펼쳐 읽어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한 지역명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경주'
  나의 직감은 레이가 경주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곧 그 직감은 확신에 차기 시작했다. 서둘러 버스터미널을 향했고, 표를 사면서 나는 다짐했다.
  '만약 레이가 경주에 있다면, 널 좋아하고 있다고, 함께 별을 보고 싶다고 말하리라.'
  결심을 하고 나니 나는 더 안달이 나 엉덩이를 의자에서 붙이고 있을 수도 없이 들썩 거렸다. 서울에서 경주로 가는 약 4시간 정도의 시간이 너무 더뎌 마음이 초조했다. 그 초조함은 나의 확신을 점점 무너트렸고, 그곳에 레이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텅 비어버린 머리를 쥐어뜯으며 두 손을 모아 기도 하기 시작했다 '제발 살아있기만 해줘.' '내가 반드시 찾아낼게.'  
  어째서 사람은 항상 이렇게 뒤늦게 깨닫게 되는건지, 뒤늦은 후회를 해야만 하는 건지, 옆에 있을 땐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지. 점점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다시 일기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도 날 찾을 수 없을거야.'
  라는 문장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일기 내용으로 봐서는 아마 부모님에게 자신이 게이임을 들키고 난 후에 있던 갈등에 대한 답을 적어 놓았던 듯 보였다. 그리고 레이는 말 그 대로 어디에서도 영훈이를 찾을 수 없게 전부 지웠었다. 하지만 레이는 영훈이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영훈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음이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었을까? 끊임없는 질문들은 허공으로 뿌려지고 그 사이 나는 경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해는 다 지고 깜깜해진 후였다. 나는 버스 터미널에서 바로 택시를 잡아 기사 아저씨에게 '무장사지'라는 곳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이 밤에 무장사지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꼭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다고 대답하자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그곳엔 아무도 없어. 출입통제돼있는 곳이야. 라고 말을 하고는 입구에서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턴 못 올라가~"
  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걷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말했던 출입통제 표지판을 애써 무시한 체 걷고 또 걷기 시작했다. 무던히도 덥고 습했던 그날의 여름. 한 치 앞도 볼 수 없이 깜깜했던 산 속. 더듬더듬 거리며 만져졌던 나무결의 촉감, 끝을 모르고 뻗어있는 경사. 한참을 걷고 또 걷고 나서야 만났던 끈덕지게 습한 갈대밭.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젖어있는 흙 속으로 운동화가 푹푹 빠져들어갔다. 몇 시쯤이나 됐을까, 휴대폰의 전파도 터지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조용히 걸었다.
  한참을 걷다 듬성듬성 서있는 모아이 비슷한 여물들 사이에 쓸쓸한 등을 거북이처럼 동그랗게 말고, 혹은 동그란 가방을 메고 있었던가, 하는 어딘가 정갈한 분위기의 뒤통수를 가지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놀라지 않도록 인기척을 내어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만월의 아래 서있던 소년.
  날을 잘못 잡았다. 하필 그날은 보름이었다. 꽉 차오른 달빛에 별빛은 온데간데없고, 콧등을 간질이는 조그마한 들벌레를 쫓아내려 휘저은 손을 따라 잃어버린 나의 시선이 혼란스럽게 공중으로 흩어지며 안도감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꽉 찬 보름달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별들은 한참 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다 보이는 익숙한 뒤통수에 눈물이 흐를것만 같았다.  
  레이다. 레이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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