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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Aug 09. 2019

아까시아 나무 이야기

사랑점



학교 앞에 사는 아까시아는 아주 조용한 새벽, 가장 먼저 깨어납니다. 매일 놀러오는 참새를 맞이 하기 위해서 간단한 운동을 해야하거든요. 줄기를 튼튼하게 해서 많은 참새들이 기댈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셈이죠.
오, 저기 참새들이 오네요. ‘읏차!’ 아까시아가 힘을 주어 기지개를 켜자 싱그러운 향기가 퍼지며 ‘뿅뿅’ 새싹들이 돋아납니다.
“아까시아~ 좋은 아침이야!”
갈색 깃털을 우아하게 빗어 넘긴 참새는 언제나 노래하듯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아까시아도 반갑게 참새를 맞이해요.
한시도 쉬지 않는 수다쟁이 참새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하다보면, 저 멀리서 등교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까시아는 이 시간을 참 좋아했어요.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고 즐겁거든요!
그날은 두명의 친구가 손을 잡고 아까시아를 찾아왔습니다.
“너 혹시 이거 알아?”
아까시아를 가리키며 아이는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어떤 거?”
궁금한 아이의 친구도 대답을 재촉했지요.
“이 아까시아 잎으로 사랑점을 칠 수 있대!”
눈이 동그래진 친구는 아까시아 나무와 친구를 번갈아 봤어요.
“정말? 어떻게?”
궁금했던 아까시아 나무는 아이와 함께 살짝 고개를 숙여 대답을 기다렸고, 의기양양 해진 친구는 까치발을 들어올려 손을 쭈욱 뻗었습니다. 그러더니 아까시아의 나무 줄기 하나를 뽑는게 아니겠어요? 간지럼을 느낀 아까시아의 몸은 부르르 떨렸습니다.
“그건 말이야~”
아이의 말에 아까시아는 꿀벌이 생각났습니다. 다정하게 대하지만, 항상 심통난 얼굴로 까칠하게 대하는 꿀벌과 친해지고 싶었기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잎을 하나씩 떼어 내면서 점을 치는거야, 그 아이는 나를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마지막 잎을 떼어낼때 나오는 말이 점괘인거지!”
아까시아 잎을 떼어내며 두 아이는 총총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는 나를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점괘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한 아까시아는 아이들을 향해 한껏 귀를 기울였지만 학교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걸음이 빨라진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 참새들은 다른 나무로 날아가고, ‘씨잉’ 소리를 내며 빠르게 꿀벌이 찾아왔습니다.
“꿀좀 줘!”
꿀벌은 오늘따라 더 심통이 난 목소리로 아까시아의 꽃 봉오리를 쪼아댔습니다.
“정말 주고싶지만, 오늘은 꿀이 없어.”
벌꿀에게 꿀을 주기 위해선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거든요. 충분한 꿀이 모아져야만 꽃 봉오리가 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야얏!”
하지만 꿀벌은 자신의 침을 이용해 꽃 봉오리를 더 쌔게 쪼아댔습니다. 환하게 웃던 아까시아는 울상이 되었어요.
“흥! 그러면 다른데로 가버릴거야!”
“자...잠깐만! 내 잎을 줄게! 이걸로 할 수 있는게 있어!”
아까시아는 다급하게 자신의 잎 줄기를 내밀었습니다.
“필요없어! 오늘도 꿀을 얻지 못하면 대장에게 혼쭐이 나고 말걸!”
꿀벌은 흘낏 보고는 쌩하고 쏜살같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늘 활기차게만 들리던 학교 종소리도 슬프게만 들려왔죠. 그리고 아침에 찾아왔던 두 아이는 다시 아까시아를 찾아 왔습니다.
“이게 뭐야, 날 좋아하지 않는다잖아.”
“다시 한번 해보면 어떨까?”
처음 사랑점을 알려준 친구는 미안한지 안절부절 못하며 아까시아 잎을 따서 주었고, 이번에도 역시 안 좋아한다고 끝이난 점에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반짝 글썽이기 시작했습니다.
“엉엉. 그 아이는 날 좋아하지 않는거야!”
그러자 털 복숭이의 거미가 천천히 내려오며 말했습니다.
“안 좋아한다로 시작하면 되잖아.”
그 말을 듣기라도 한건지, 아이는 다시 한번 제안했죠.
“그럼 이번엔 안 좋아한다로 시작하면 어때?”
다급해진 친구의 말에 아까시아도 눈을 반짝였습니다. ‘그래! 좋아한다라고 끝나기만 하면 되는거 아닐까?’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라며 몸을 부르르 떨어 아이와 가깝게 잎을 내밀었습니다.
“싫어! 좋아한다로 시작해서 좋아한다로 끝나고 싶다고! 엉엉엉엉”
결국 목 놓아 울기 시작한 아이는 아까시아 나무에게서 멀어졌고, 그의 친구도 아이를 뒤쫓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속상한 아까시아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자 매달려있던 거미가 출렁이며 많은 다리로 아까시아의 옆구리를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바보같으니라고! 그런 미신을 믿으니까 네가 항상 뺏기기만 하는거라고~”
“내가 뭘?”
“넌 항상 참새들에게 팔을 내어주지만 고맙다는 소리 한 번 못들었지? 아이들도 네가 힘들게 만들어놓은 잎을 떼어가기만 하지, 또 꿀벌도 너의 꿀만 쏙 빼먹고 도망 가버리잖아~”
“그렇지만…. 난 내가 줄 수 있는게 있다는것 만으로도 기뻐. 날 찾아와 주잖아.”
“정신차리라고! 그렇게 주기만 하다간 빈털털이가 되고 말걸?”
“하지만 난 친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게 좋은걸….”
“난 그렇게 바보같이 살고 싶지 않아.”
거미는 자신의 실을 더 길게 늘어뜨려 떠나 버렸습니다.
“내가 바보같다고…?”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겨진 아까시아는 속상해 축 처진 어깨로 자신의 잎을 하나씩 떼어냈습니다.
“친구들은 나를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좋아한다, 안 좋아한다…좋아한다…안 좋아한다….”
잎이 모두 떨어진 줄기를 들고 있는 아까시아는 우울해졌습니다.
“내 잎으로 점을 친 사랑은 하나도 이뤄질 수 없는걸까?”
어두워진 밤, 설움이 폭발한 아까시아가 흐느껴 울자 꽃 봉우리 안으로 슬픔의 꿀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나뭇잎이 거세게 흔들렸습니다.
아까시아 나무 한켠에 살고 있던 거미는 지진난듯 흔들리는 집에 놀라 헐레벌떡 실을 뽑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서럽게 울고 있는 아까시아를 보게 되었죠. 지금껏 한 번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배려로 가득한 아까시아였기에, 밤에도 자신의 품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를 위해 조심조심 행동했다는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거미는 결심한듯 땅으로 내려갔죠.
나무 밑에 떨어진 줄기와 나뭇잎을 주섬주섬 모으기 시작한 거미는 주먹을 꽉 쥐고 엉덩이에 힘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엉덩이에서 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거미는 서둘러 줄기에 잎을 붙이기 시작했죠. 하나 하나 잎을 붙이던 거미는 마지막으로 줄기 꼭대기에 잎을 하나 더 붙이고 몇 번이고 개수를 확인 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하루를 시작하는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죠. 거미는 흡족한 얼굴로 아까시아에게 다가갔습니다.
“저기, 아까 말이야.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운은 항상 바뀌는 것이니 다시 한번 잎으로 점을 쳐 보는건 어때?”
거미줄로 칭칭 감겨져 있는 줄기를 받아든 아까시아는 울음을 멈추고 망설였습니다. 또 다시 안 좋아한다고 끝나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거미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까시아를 부추겼습니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좋아한다, 안 좋아한다…좋아한다. 좋아한다!”
아까시아는 잎을 떼며 거미줄이 왜 칭칭 감겨져있었는지 알게되었어요. 그건 바로 자신을 위해 홀수 잎의 줄기를 만든 거미의 마음이었던것이었죠.
“고마워.”
아까시아도, 거미도 모두 환하게 웃으며 햇살이 밝아왔습니다. 거미는 다시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참새들도 노래하며 찾아오네요. 아까시아는 이제 줄기 꼭대기에 나뭇잎을 하나 더 달기위해 서둘러 기지개를 폅니다. 마침 아이가 지나가는것을 발견한 아까시아는 몸을 부르르 떨어 아이의 머리 위로 홀수잎의 줄기를 떨어뜨렸습니다.
팔랑팔랑 머리 위로 떨어진 아까시아 줄기를 보면 아이는 망설이며 조심히 잎을 하나씩 뜯어보았죠.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좋아한다, 안 좋아한다…좋아한다. 좋아한다! 와 좋아한다! 좋아한다야!!”
친구에게 달려가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아까시아도 너무 기뻐 싱그럽게 잎이 빛납니다.
“오! 오늘은 꿀이 있네?”
“응. 마음껏 가져가 꿀벌아.”
“고마워! 오늘은 대장에게 혼나지 않겠다! 친구들도 함게 와도 돼?”
“그럼!”
처음으로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꿀벌이 덕분에 이번엔 기쁨의 꿀이 꽃 봉오리로 가득 찹니다. 아까시아의 곁에는 많은 아이들이 찾아오고, 더 많은 꿀벌들이 꿀을 얻어가며 고마움을 전하게 되었답니다. 덕분에 아까시아는 언제나 외롭지 않아요. 기쁨의 꿀을 품을 수 있고, 기지개를 펴며 잎을 홀수로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거든요. 숨겨놓은 사랑, 우정의 꽃말을 가진 아까시아 나무는 여전히 학교 앞을 지키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전파하며 행복한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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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진짜 이름은 ‘아까시아 나무’ 입니다.ㅎㅎ

예전에 썼놨던 글귀를 동화로 풀어 묵혀두기 아까워 풀어봅니다.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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