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홍 Apr 14. 2019

내가 가장 못됐던 순간

고백


고백하건대... 나에겐 트라우마처럼 무겁게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면, 식은땀이 날 정도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리고 싶은 그런 순간.
지난주 초등학교 친구가 엄청나게 오랜만에 놀러 왔다. 자연스레 나온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졸업앨범을 펼치게 되었고, 한 친구의 사진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정규 교육 과정, 특히나 초등학생 시절 나는 미련할 정도로 착한 아이였다. 셀프 칭찬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착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착하다는 말로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몸소 체험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다.
초,중,고가 하나씩 밖에 없는 작은 동네였다. 지역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너무 당연하게 같은 학교의 중학생이 되었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6년을 넘게 지냈어도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는 꼭 생기기 마련이다. 그 표적은 언제나 어리숙하고 착함을 강요 당했던 친구가 되는게 이상할것도 없겠지. 다루기 쉬우니까. 그 표적은 처음 언급했던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그 친구였고, 가해자들의 괴롭힘은 심화 과정인듯 더욱 거세졌다. 글로 풀어 놓기도 싫을 정도로 잔인하고 포악스럽게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나는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을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쉬는 시간마다 각 반에서 찾아와 그 친구를 괴롭히는 소리, 같은 반 괴물들의 괴롭힘이 끝나지 않는 수업시간까지. 나는 침묵함으로써 그 괴롭힘을 방조했다. 사실 그 모든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나는 그 악몽같은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를 택했고, 시절의 끝을 알리는 졸업식이 찾아왔다.
들썩들썩 함께 지냈던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인사하고 교문을 나서는데 그 친구가 가족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 친구 앞으로 갔다. 그 동안 서로 말 한 마디 섞지 않았던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졸업식의 모든 상황을 지켜봤을 그의 부모가 전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나의 아들의 순탄치 못한 생활을 가슴아파할까 걱정이 되었던가. 원래도 친했던 친구인양 함께 사진을 찍고, 사관학교로 간다는 그 친구에게 나도 다른 지역으로 간다. 거기서는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 받고 헤어졌다.
그리고 한참 뒤, 새로운 지역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메신저 버디버디로 그 친구에게 쪽지가 하나 왔다.
‘죽고 싶다.’
역할이라는게 정말 무섭다. 한 번 부여받은 정체성은 문신처럼 몸에 새겨진다. 자세한 사정까지 묻지 않았지만 아마 중학생 시절처럼 새로운 곳에서도 괴롭힘의 표적이 되었었겠지. 놀란 마음에 급한 데로 구구절절 답을 보냈다.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죽으면 안 된다고.
나는 버티라는 말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가. 그 후로도 끊임없이 그 친구는 죽고 싶다는 쪽지를 자주 보냈다. 나름 성심성의껏 답을 보냈다 생각했지만 그땐 나도 너무 어렸고,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응원과 위로의 정도로 들쑥날쑥 했겠지. 또 계속 되는 죽고 싶다는 그 외침에 나 또한 지쳐있었겠지. 어느 날 또 다시 날라온 죽고 싶다는 쪽지에
‘그럼 그냥 죽어.’
라고 답을 보냈다. 그 후로 그 친구에게 더 이상의 쪽지는 없었다.
나는 변명할 기회도, 그 순간을 바로 잡을 기회 조차 없이 아직도 그 친구의 생사를 모른다.
자주 생각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다정할 수 없었을까. 성의가 없더라고 죽지 말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내가 응원하겠다고. 그 어렵지도 않은 타자 쳐서 보내도 되지 않았겠냐고.
순간의 지침으로 엎어진 실수가 이리도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마지막 순간이라는 게 언제가 될지 지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순간의 실수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에세이 #내가가장못됐던순간 #고백

작가의 이전글 알다가도 모를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