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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Apr 17. 2019

쓰담고싶은 뒤통수,

때리고싶은 뒤통수.


길고 기—인 하루였다.
다음 날을 대비해 일찍 누웠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 한 시간은 새벽 2시쯤으로 기억한다.
두 시간이 채 흐르지 않았을 때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눈이 떠졌다.
가만히 바라보다, 액정 빛이 사그라드는 것을 확인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다시 울리기 시작한 휴대전화를 들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긴 통화가 끝날 즘,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잠이 들었고, 나는 잠에서 깼다. 창문 밖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온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세월호 희생자 5주기의 날이었고,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타는 악재가 이어졌다.
네모반듯한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수정을 요구하는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부분 감정 없이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목소리지만, 계속되는 통화와 예의 없는 대응에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통화 목록을 손가락으로 4번 정도 훑어야지만 그날 일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내가 맡아 진행하는 4개의 그룹 중 한 그룹은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 내 탓인 양 빈정거렸다. 화를 내고 싶은데 화낼 시간조차 없다. 마감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아주 가까이 내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집이 있었다. 일이 끝나면 먹고 기분 좋게 돌아갈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버텼지만, 내 입으로 들어온 것은 부실한 햄버거였다.
햄버거를 씹으며 새벽의 통화 내용이 생각났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끝을 후회하지 않는다 했고, 나는 시작을 후회한다 했다. 눈가가 시큰해지는 게 느껴지는데 억지로 참는다. 한 사람을 위해 너무 많은 눈물을 쏟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먼저 마감을 마친 분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하며, 아직 처리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고 말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누군가에겐 때리고 싶은 뒤통수겠지만, 적어도 이 분에게는 쓰다듬어주고 싶은 뒤통수를 가지고 있구나, 나.
울컥하는 심경이 올라온다.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속 이야기라면 그 자리에 바로 눈물을 쏟았겠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면,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함께 있었다.
마지막까지 원망하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허무하고 허탈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피곤하고 고단해도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오늘은 너무 많은 눈물을 참았구나,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야 하는 날이구나.
꺼이 꺼이 새어 나오는 소리를 삼키며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들었다.



#에세이 #쓰담고싶은뒤통수 #때리고싶은뒤통수 #울어야하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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