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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Apr 26. 2019

탈코르셋의 관한 단상

경험과 필요에 의한 의식개선



현 시각 탈코르셋을 대표하는 모습이라면, 숏컷과 민낯인듯하다.
지금의 나는 귀만 덮을 정도의 짧은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밖을 나설 땐 화장을 하고, 사진 속 나는 허리를 덮을 정도로 긴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민낯이다.
내가 머리를 기르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지금은 그저 옛날이야기지만,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두발 규정이 있었다. 중학교 때는 귀밑 3cm, 고등학교 때는 15cm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건 여자 학생의 규정이고 남자 학생은 반삭까지만 허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완전 민머리는 반항하는 걸로 간주한다나 뭐라나. 당연히 염색도 불가했고, 파마도 불가했다. 친구 중 한 명은 원래부터 뿌리가 노랗게 나다가 자연스럽게 검은색으로 변하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걸 증명하기 위해 어릴 때 사진도 제출했지만 결국 주기적으로 검은색 뿌리 염색을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생긴 반발심으로 졸업한 뒤로는 쭉- 긴 머리를 유지했다.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하고 지지고 볶고 머리카락을 가만 두질 않았다.
그러다 소아암 어린이들의 가발 제작을 위한 머리카락 기부가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 정도의 주기로 묶어서 25cm가 될 즘까지 기르고 자르고를 반복 중이다. 기르는 도중에도 열처리가 된 머리카락은 가발을 만드는 과정 중 녹아버리기 때문에 아무런 시술도 하지 않고 기른다. 긴 머리카락은 여성성을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고, 여성의 권력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아주 어릴 때 집에서 엄마가 나의 머리카락을 잘못 잘라 미용실에서 엄청 짧은 머리를 하고 왔을 때도 여자애 머리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화를 내던 아빠의 모습도 생생하고, 성인이 되어 스스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왔을 때도 왜 이렇게 짧게 잘랐어, 남자 같아~라고 말하는 주변의 의견들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알게 모르게 학습되어온 성 역할을 대변하기도 하는 이 머리카락의 길이를 거부함으로써 인식의 변화를 주는 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시절의 단발 규정 같은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나 또한 머리카락을 자르고 초기엔 뻗치는 게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편리함이 따라온다. 특히 머리를 감고 말릴 때의 그 쾌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만에 발견한 저 사진을 보면서 와, 나 저 때 저 머리 어떻게 관리했냐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정도로 짧은 머리가 편하기에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생각의 전환을 맞이할 계기가 없는 사람의 거부감 또한 이해한다. 그리고 어떤 유형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편하게 생각되는 길이와 스타일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화장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좀 오랜 기간 다니지 않게 되면서 화장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얼굴도 답답하고, 트러블이 올라오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화장을 하지 않으며 피부도 숨을 쉬는지 트러블도 없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밖을 나설 때 화장을 한다. 이유는 꽤나 단순하다. 단지 화장을 하고 싶은 기분도 있을 테고, 상황에 맞춰 화장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거나, 그냥 민낯으로 다니는 것보단 미세먼지나 유해 물질이 피부를 감싸고 있는 화장품에 묻어날 테고, 집으로 돌아와 그 화장품을 씻어내는 것이 피부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
이렇듯 사람이 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된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험과 필요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한다.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는 탈코르셋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확실하게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시대도 변하고 있고, 외형은 성별을 떠나 개성을 보여주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탈코르셋은 말 그대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은 것을 주장하는 사회적인 운동 그 자체로 존재했으면 한다. 탈코르셋의 지표를 세워두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규탄하는 것보단, 스스로 지금의 내 모습이 타인의 시선을 위한 것인지 나의 필요에 의한 것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의식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탈코르셋의_관한_단상 #의식개선
#여성성과남성성 #경험과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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