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도서관에 빌리려던 책들이 전부 대출 중이어서, 고민하다 추천받았던 기억이 번뜩 났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나왔던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이런 책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목만 보고 지나쳤던 기억이 났다. 공개적으로 발행되는 출판물이 반드시 자국에 우호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어쩐지 대놓고 드러내는 건 얼굴에 침 뱉은 행위 같아서 ‘한국이 싫어서’라는 노골적인 제목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추천을 받았으니 책장을 펼쳤다. 그리고 마지막 장이 보일 때까지 한 번도 덮지 않았다.
미리 말하지만, 편견이라는 게 얼마나 깊숙하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더 경계할 필요가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와, 이런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소설은 화자가 친구에게 회상하듯, 하소연하듯, 근황을 전하듯 한국에서 호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유는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을 떠나는 주변인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들이라, 혹은 나도 언젠가 떠날 것을 계획하며 했던 말들이라 공감이 갔다. 모두 까기 인형처럼 무턱대고 한국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말하듯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정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왜 내가 태어난 나라를 싫어하게 되었는가를 조곤조곤 서사한다. 읽다 보면 너무 당연하게 배우고 살아왔던 삶의 불합리라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타당성을 갖게 된다.
한국이 정의하는 ‘인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이 선호하는 인재는 어떤 육성과정을 거쳐 탄생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배출된 인재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인재’의 기준에 벗어난 자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나, 행복감을 추구하는 것이 사치스럽고 까다롭다고 수긍하게 만드는 지금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있다면 느껴졌던 감정을 어떻게 설명했는지도. 아마 그 이유가 매우 모호하고, 잘못의 화살을 굳이 돌리자면 자신에게 오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날카롭지만 부드럽게 비판하듯 말을 걸어오는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가 반가웠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닌걸 꾸역꾸역 인정하고 포기하는것과, 처음부터 외부인임을 인정하고 최소 계급으로서 명분있는 발버둥을 치는것은 다르다.
결국 우물안 개구리로 키워져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결코 그 상황을 맞서 해결할 용기도, 생각도 없는 지루하고도 반복적인 딱 한국적인 불만이 한국을 떠나는것을 택하게 되는건 아닐까?
미래를 두려워하는게, 다들 그렇게 사는거라는 당연함으로 설명되어지는 나라. 패배주의를 가르치고 익히는 나라. 더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행복을 추구하는것이 사치스럽고 까다롭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하는 진짜 이유는.
결국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적인 정서를 몸소 겪고 한국적인 교육을 받아온 내가 아직 한국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한국에 살게 될것 같아서 이다.
아직도 한국이 정의하는 ‘인재’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는 과거의 내 선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준에 부합한다 한들 그 무엇도 보장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회의 기준은 모두 ‘내가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서 비롯된 것을 인정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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