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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Aug 09. 2019

저어기 어디 사는 김 모 씨의 나머지

조각 모음


헉 소리 나도록 바빴던 지난 달을 보상이라도 하듯 혼이 나가도록 한가한 이번 달.
그렇지만 보상이라고 하기엔...
헉 소리 나게 바빴던 달은 육체와 정신이 고통받고, 혼이 나가게 한가한 이번 달은 정신과 육체가 고통받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진행 중인 크고 작은 문제들은 계속해서 명치를 짓누른다.

이곳저곳에서 지친영혼들의 쓰러지는 소리가 픽픽하고 들려오는 듯만 하다. 조용하게 복작이는 이 복도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표정이 모두 한결같다.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복도 끝과, 끝은 볕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휴식처 같다.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은 인생 어느 부분을 헤매고 있는 걸까, 어느 부분에서 이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멈춰 서서 잊혀지길 기다리는 걸까, 혹시나 억울함에 소곤소곤 자신의 이야기를 병처럼 옮기는 것은 아닐까.

처음 썼던 장편 ‘나는 아직도 내가 낯설다’의 일부가 문득 생각나서 가져왔다. 빈혈 때문에 주기적으로 다니던 한 대학병원은 예약을 하고 가도 늘 30분 정도 대기를 하고 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대기시간이 길어지던 날이 있었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병원을 다니다 보면 이상하게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더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환자들의 표정은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 그저 활기 없는 몸짓이 느릿느릿 공기 중으로 떠다닌다.
1시간이 좀 더 혹은 그것보다 조금 더 지났을까? 내 이름이 불려 들어갔더니 의사는 “많이 기다리셨죠?”라고 물었고, 나는 당연하게도 “네, 좀 많이 기다렸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그때 굳어져가는 의사의 얼굴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일반이 아닌 추가금을 내야 하는 특진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일반으로 바꿀 수 없냐고 물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된다는 대답을 들었었다. 의사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고, 예약한 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지나도록 늦어지는 이유도 듣지 못했는데 오래 기다렸다는 말에 얼굴이 굳을 건 뭐람? 그저 형식적으로 물어본 거였으면, 내 대답도 형식적으로 들으면 되는 거지. 이상한 세계구먼 생각했었던 기억. 그리고 대학 병원 예약 시스템에 권력층 특혜 의혹 뉴스를 보며 왠지 모르게 조각이 맞춰지는 묘한 기분.

나는 요즘 나머지를 열심히 주워모으며 슬슬 새로운 소설을 준비 중이다. 더 많은 조각조각이 모아지면서 어떤 이야기가 될지 나 스스로가 기대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가제는 ‘저어기 어디 사는 김 모 씨의 나머지.’

#저어기_어디_사는_김_모_씨의_나머지
#조각_모음 #새로운_시작
#기대했으면_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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