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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Dec 13. 2019

먹고, 살고, 보여지는 위대함과 역겨움

관광 상품의 민낯


사파 여행기를 작성하기 전에 꼭 해둬야겠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여행 내내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불편함. 사파가 주력으로 내미는 관광 상품의 민낯이다.

사파는 해발 1650m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12개의 소수민족 부족이 터를 이뤄 살고 있다. 베트남은 지금 한창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고, 모든 지역과 도시가 관광상품을 개발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뜨거운 동남아시아의 날씨를 피하기 위해 현지인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 고산지대 ‘사파’도 부지런히 개발중이다. 그럼에도 사파는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지역이었다. 인접한 대도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차를 이용할 경우 편도 5시간 정도가 걸리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판시판은 정상까지 등반하는 데만 꼬박 3일 정도가 걸렸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시키기 위해 2016년 썬월드사가 판시판에 케이블카를 설치함으로써 무려 7899m의 길이를 단 20분으로 단축시켰다. 이는 기네스에 올라와 있는 최장 길이의 케이블카이다.
이렇게 관광객 유치를 위해 힘쓰고 있는 베트남 정부이지만, 그 곳에 삶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민족에게까지는 미처 신경쓸 겨를이 없었나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파는 유교 영향을 받았다. 가부장적이고, 아직 일부다처체가 일반적이다. 어린 신부가 아이를 낳고, 어린 여자 아이가, 더 어린 남동생을 업고 거리로 나와서 지나다니는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판다. 이것이 사파 시내를 나가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보이는 모습일것이다. 유난히 여자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데, 남자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도록 하고 여자 아이들이 생계를 돕는단다.
처음부터 어린 아이들에게 물건을 팔게 하진 않았을것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보호받아야하는 어린 개체는 본능적으로 다른것보다 눈에 띈다. 물건을 팔기 위해 나온 엄마 옆에서 귀여운 모습으로 앉아있거나 놀았을것이고 물건보다 엄마는 객들이 그런 모습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것에 더 간단하게 돈을 버는 방법을 생각해냈을것이다. 그리고 객들의 즐거움을 위해 날이 덥든 춥든 자신의 어린 자식에게 전통 의상을 풀 장착 시키고 물건을 쥐여 거리를 다니는 객들에게 무작위로 손을 내밀라고 시켰을 모습들이 순차적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잘 먹혔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내미는 시세 2K 정도 되는 실 팔찌를 10배 넘는 금액을 주고 산다. 혹은 더 많은 돈을 물건을 받지 않고 쥐여 주고 그 대가로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아이의 사진을 찍어간다. 그 뒤에는 그 아이의 엄마가 항상 한 발짝 뒤에 있고, 프레임에 담긴 소수민족 의상을 풀 장착한 예쁜 여자 아이의 모습 혹은 그 아이와 다정한 모습을 한 여행객의 모습은 SNS를 타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이런 모습들이 사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광 산업으로 먹고 살아가는 나라 특히 막 자본주의가 스며들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퍼지는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며 이 모습이 눈에 띄게 불편했던 나라는 ‘미얀마’였다. 3천기가 넘는 파야(불탑)로 유명한 바간의 큰 파야에는 반드시 어린 아이가 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가 아니다. 스스로 나와서 처음보는 외국인들에게 곰살맞게 굴며 어설프게 파야 안을 가이드 한다. 그리고 나가기 전 준비해온 엽서나, 그림들을 보여주며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해맑게 사달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 모습을 보면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당돌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아이에게 학교는 안 가니? 라고 묻자. 나는 학교 안 가고 여기서 엽서 팔아. 뭐~ 나는 학교 가는것보다 여기서 엽서 파는게 더 즐거워~ 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뉘앙스의 대답과 표정이 생각난다. 그 당시에도 부모보다 아이의 벌이가 더 좋아서 일부러 학교에 보내지 않고 물건을 팔게 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미얀마의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자신이 관광객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대가로 얻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때 그 소년이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 아니면 적성을 빨리 찾았다며 즐겁게 일 하고 있을지, 후회는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 그 일을 울며 겨자먹기로 아직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당시의 소년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했다.

그런데 사파의 여자 아이는 아니다.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아이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그 옆에 어떤 관광객이 멈추자 엄마는 아이의 어깨를 툭 친다. 그러자 아이는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로 관광객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객은 지갑을 뒤적거리며 잔돈을 찾아보지만 없었다 보다. 미안해 잔돈이 없어. 미안해~ 하며 보내지만 아이는 무슨말인지 몰라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삐쭉삐쭉 입술을 내민다. 그 모습을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그제서야 다가가자 객은 다시 잔돈이 없다고 모녀를 돌려보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물건이 들려있었다. 아이는 아까 잔돈이 없어 거절한 객에게 다시 물건을 보인다. 객은 난처한 표정으로 다시 지갑을 뒤진다.
아직 싫다는 의사 표현도 엄마의 손을 잡고 우는것으로 밖에 못 할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다. 사파에는 그런 아이들이 광장에도 있고, 호수에도 있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닌다.
손수건 만한 보자기를 바닥에 펼치고 준비해온 물건들을 나열하는 아이, 자기보다 훨씬 어린 동생을 업고 물건을 직접 파는 아이, 삼삼 오오 모여 춤을 추고 모여든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 아이, 조금 더 큰 아이들은 또박또박 이걸 사주면 제가 행복해질거예요 라고 영어를 내뱉는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다.

지역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지는 하고 있는지, 거리에는 ‘아이들에게 돈이나 간식을 주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있다던데, 나는 보지 못했지만 흡사 동물원의 ‘먹이를 주지 마시오’의 뉘앙스로 들린다.

나의 이런 불편한 오지랖보다, 당장 아이에게 돈을 쥐여주는것이 그들의 지금에 확실한 보탬이 될거라는걸 모르는건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것이 없으니까. 하루 아침에 세상이 변해있고, 그 세상에 빠르게 편승하기 위해선 돈이 가장 필요하다는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흙으로 다져진 땅은 트럭이 부지런히 다니며 흙먼지를 뿌리고 흙탕물을 만들고 튀겨가며 더 큰 돈벌이를 위한 걸음을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거리로 나와 모두 다 같은 물건을 팔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물건을 팔게하는것 아니면 그들의 삶을 통째로 전시하는 선택밖에 주지 않는건 불공평하다는것이다.
관광객이 사파를 찾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것이다. 우리나라도 티브이로 방영되여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는것도 알고 있고, 자연 경관도 있을것이고, 또 적지 않은 부분 소수 민족의 모습을 체험 혹은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유도 있을것이다. 한 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시각적인 자극으로 쉽게 인기가 가라앉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이 특히나 더 SNS에 여행지 모습을 올리는것이 무섭고 망설여졌다. 그 행위에는 묵직한 책임감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활발하게 개발이 이뤄지는 곳에서 소수 민족들을 위한 개발이 없는것이 내 나라도 아닌데 진하게 개탄스러웠다. 표지판 따위가 아닌 조금 더 직접적이고,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그것이 멀리 봤을땐 관광객 유치에도 분명 더 큰 도움이 될거라고.

아이들의 모습을 찍은것도 차마 판매를 하는 모습을 찍을 엄두가 안 났고,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여행 내내 망설이다가 마지막 날 그냥 놀고 있는 모습이 보여 한 장 찍어왔을 뿐이다. 이 아이들이 우리 나라에 있다면 아직은 노는게~ 제일 좋은 뽀로로를 보며 즐거워할 나이 아닌가? 저렇게 노는 모습이 아직은 더 어울리는 모습 아닌가 싶어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열심히 SNS를 하고 있는 사람을 봤다. 같은 나라 혹은 주변의 사람이었던듯 싶은데 소수 민족 아이와 함께 찍은 여러장의 사진을 비교하며 어떤걸 올릴지 고르는것 같았다. 그 사이에도 쉴 틈 없이 SNS 알람이 떴다 사라졌다 한다. 무례한줄 알지만 그냥 순수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여기 와서 아이랑 사진을 찍으며 무엇을 생각했냐고, 아 우리도 옛날엔 저런 시절이 있었다던데, 혹은 아직도 이런 곳이? 혹은 아이랑 사진을 찍기 위해 왔을까? 그렇다면 SNS를 통해 봤던 모습이 원하는 그 모습과 일치 했는지. 혹은 그냥 얼른 이 사진 올려서 좋아요 많이 받아야지 라는 생각을 할까?

식도를 타고 시큼한 역겨움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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