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의무에서 겪은 아픔과 차별
병역의무로 인함
부모의 지속된 학대로
육신은 건강했으나
정신과 영이 건강하지 못하여
나는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못했다.
대신 육군 보충역이란 역종으로
공익근무요원이란 이름으로
28개월 간 관공서의 행정요원으로 복무했다.
4주간의 기초군사교육 때
나는 동료 훈련병들로 인해 시달렸다.
이들은 나보다 나이가 너무 많았는데
방위병으로 입대할 사람들 이였다.
그들은 그게 싫어서 시간을 끌었다.
나 같으면
방위병 입대 명령에 즉각 임해
무사히 전역하면 보충역 상병이 되었다.
나의 병적기록표 앞면엔
마음의 아픈 상처의 흔적들이 있다.
정신과 군의관의
징병 신체검사 관련 기록들이
너무 많이 많다.
쳐다 보기만 해도
눈에서 눈물이 핑 돈다.
나의 병적기록표 뒷면에는
4주간의 기초군사교육 기록과
공익근무요원 관련 복무사항이
짧게 적혀져 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복무 이탈 사항과 새 근무지가
많이 적혀져 있다.
심지어 처벌 받은 사항까지.
나의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성실히 복무했기에
소집해제 관련 기록과
근무지 배치 사항만 있다.
옛날 방위병 선배들의 병적기록표를 생각나게,
좀 아쉬운 것은
진급기록이 오직 "육군 이등병" 뿐이다.
군번은 육군 방위병 군번을 받았다.
병과는 행정으로 부여하려다가
보병으로 부여한 낌새가 난다.
내가 육군 현역병으로 군복무 했다면
병과는 행정으로 부여 받았을 턴데,
그러나 보충역 복무 중에
나는 행정병과를 인정 받게 되었다.
28개월 간 관공서의 행정요원으로
나는 상급자 이였던
공무원들의 인정과 격려를 늘 받았다.
나는 중앙 병무청에서 복무했다.
아내는 내게 조금도 묻지 않았다.
나의 병역 의무에 대하여,
나는 아내에게 말했으나
부모의 학대로 인해
군면제를 받고
바로 28개월 동안 관공서에서
국가 공무원 밑에서
최하급 공무원으로 일했다고 말해줬다.
부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육군 보충역으로 복무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찾으면
나는 아르바이트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병역의무가 끝나자 마자
정규직 청원경찰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농협 은행의 지점의 청원경찰이었다.
그런데 무술단증이 당시에 없어
불합격된 아픔이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나는 국민은행 청원경찰에 합격된다.
늦은 나이에 무술단증을 받았기에,
그러면
지금도 나는 국민은행 청원경찰로서
올해로 20년된 최고참 청원경찰이 되었을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