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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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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서 Sep 14. 2017

슬픈 인생

찐계란 보다 못한 삶


내 삶은 참으로 슬프다.

못난 부모로 인해

원치 않는 삶을 살아왔다.

한 직장에서 장기근속은 불가능했다.

못난 부모는 죄책감이 없어

나와 아내를 우울하게 하는데,

그분은 믿음의 후배를 통해
용서기도를 드리라고 말씀 하신다.


찐계란은 그래도 볼품이 있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데

나는 어디에 있는지 간에 쓸모가 없다.

나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아야 했나보다.

못난 부모는 고통만 준다.

교회에 가본 적도 없고,

직장생활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나와 아내의 삶을 옥죄고 있다.


아내의 나라 베트남에서

장모님 내외가 오셨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장모님께 기대어 울고 싶다.

장모님의 마음이

아내의 행복을 위해 헤어지라면

나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내가 한국인이라면 가능했던 일이다.


밖에는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는데

못난 부모가 만든 삶으로

내 마음은 이미 병든 상태이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화가 쌓인다.

못난 부모로 인한 핍박으로,

그래도 못난 부모를 위해 용서기도를 드린다.

게다가 못난 부모를 관용으로 섬긴다.


못난 부모는 매우 강요한다.

아내와 내가 이혼하든지

나와 아내가 차에 뛰어 들어 자살할 것을

못난 부모는 기다리고 있다.

내가 계약했던 보험들에 대해

보험 보상금을 타 먹어서

자신들만 살려는 속셈을 부릴려고

나에게 늘 자살을 강요하는 듯.


못난 부모로 인해

난 여러 직종에서 일을 했다.

장기 근속은 꿈꿀 수도 없었다.

내게 장기 근속은 매우 불가능 했을지 모른다.

내가

원했던 직종의 일이 있어도

난 그 일을 못해보고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하게 내버려 뒀다.


나는 직장서 선임자에게 매일 혼난다.

칭찬과 인정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못난 부모의 괴롭힘이

나의 업무를 마비 시키고 업무장애를 준다.

선임자에게 터 놓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내가 욕을 먹을 수 있어 피했다.

그렇다고

선임자가 인간성이 좋은 것이 아니라서,


나는 늘 한숨 뿐이다.

노인네가 되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그분은 내게 늘 위로를 하시는데

그분의 위로가 내게 부담이 되는 건지

나는 멍하니 성경책을 펼쳐 읽는다.

내가 죽어
무덤에 누워 흙이 되면

내게 진정 찾아오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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