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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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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서 Nov 27. 2018

너무 그리움에 사무치다

마음의 또 다른 한맺힘

보고픈 아내


가정의 불화와 갈등으로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 2년 5개월 째,

아내는 노모의 폭력과 폭언으로

울면서 옷이 들어있는 보자기를 들고

함께 살았던 얄미운 집을 울며 떠났다.


그 이후에 아내는 월세방을 얻었다.

예수님과 아내와 함께
함께 행복하게 사는 날이 있었으나

노모의 심한 간섭과 나에 대한 폭력으로

처형이 아내를 데리고 월세방을 떠났다.


나는 노모랑 사는 신세가 되었다.

노모는 이미 아버지란 사람과 이혼하여

독거노인처럼 살고 있었다.

그날부터 계속되는 노모의 폭력과 폭언, 저주, 욕설

나는 마음에 중병을 얻었다.


2018년 올해, 내 나이 41살까지

노모의 학대와 핍박이 계속되어

나는 삶이 더욱 힘들고 무거워짐으로

아내가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아내는 노모의 악행을 침묵으로 참으라고 했다.


노모의 계속된 악행으로

이혼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에 내가 충격 받아 바보 됨으로 인해

아내가 참다 못해 했던 말이

"나와 오빠는 이혼하고 이제 헤어져요."


베트남에서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아내도 기독교 신앙이 있었다.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기에

나름대로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점점 잊혀져 갔던 것이다.


아내가 한국에 처음 온 지 바로

아내가 나와 함께 교회 가는데

노모는 나와 아내에게 더러운 욕을 퍼부었다.

남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시간에

이 때문에 아버지란 사람과 노모가 엄청 싸웠었다.


아내가 한국에 처음 왔던 날 밤에

노모와 아버지란 사람은 크게 싸웠다.

아내는 시끄러워서 짜증을 내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잤다.

나는 화가 매우 나서 방문을 세게 닫았다.


노모의 악행 때문에

아내에 대해 그리움이 매우 생겼다.

아내가 이 세상에 없거나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영구귀국하면

나는 상사병에 걸려 죽을 지 모른다.


노모보다 아내가 여러모로 낫다.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나,

아내는 그래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언행을 보인다.

나보다 나이가 14년 어리지만

사고 방식은 이제 내 나이가 되어 성숙해졌다.


아내에게는 매우 미안하지만

노모의 악행 때문에

차라리 예수님이 나를 위해
결혼을 위해 보내신 한국 여자와 결혼했으면

노모의 악행은 더 이상 겪지 않았다.


아내와 다시 사는 날,

아내와 별거하는 원인이 생기지 않도록

예수님께 날마다 울며 기도한다.

아내와 또 별거하게 되면

나는 노모와 다시금 살고 싶지 않다.

그 때 내 직장은 외지에서 얻어질 것이다.

노모가 나를 찾아갈 수 없는 곳,

강원도 모 지역의 화약공장의 청원경찰로

무술사범 경력의 미혼의 형님과 함께 떠나련다.

아내에게 그 곳에서 함께 일하자고 권하련다.

아내는 화약공장의 단순 생산직이나 업무보조로,

거기에 구세군 교회가 있다면

아내와 함께 구세군의 하급 사관(특무)로

그 형님은 구세군의 선임 하사관(정교)이 되도록

처형도 따라 나서면

처형은 화약공장의 사무직으로 일하면서도

구세군의 여자 선임 하사관(정교)가 되도록

아내와 나, 처형이 함께 기도하고자 한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TV에서 보았던 만화 "개구리 소년 왕눈이"에서 왕눈이와 여자 친구(이름을 잊었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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