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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언 Feb 14. 2022

비가 오면 생각나는 호치민

어쩌다 호치민 마담 #7

호치민에는 건기와 우기 두 계절만이 존재한다. 호치민의 건기는 일반적으로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우기는 5월부터 10월까지로 알려져 있다. 우기는 5월부터 시작된다지만,  3월 말부터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폭우는 이번 우기가 또 얼마나 지랄 맞을지 그 전조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웃긴 건 그때마다 '3월 말인데 비가 퍼붓네, 올해는 우기가 빨리 올려나 봐'라는 글과 동영상을 4년 동안 SNS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매년 3월 31일이면 SNS '과거의 오늘' 코너에서 내가 올린 때 이른 우기 관련 게시물 연달아 보여줬다. 그래선지 이제는 3월 말에 퍼붓는 비가 새삼스럽지 않았다.


 


비와 오토바이


매년 우기가 되면 익숙한 풍경이 있다. 바로 육교 아래 모여있는 오토바이를 사람들이다. 비가 쏟아지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현지인들은 가랑비쯤은 그냥 맞고 가지만, 폭우라고 생각되면 지붕이나 육교 아래로 들어가 오토바이를 세운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 육교 아래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비가 지나가길 기다리겠지만, 빗속에도 가야 한다면 우비를 챙겨 입고 다시 도로를 향한다. 초보 라이더인 나도 종종 비를 맞고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빗물에 미끄러지는 오토바이 바퀴 때문에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속도 조절도 문제지만, 서둘러 달리다 보면 고여있는 빗물이 주변에 엄청나게 튀어 민폐였다. 나도 젖고 행인들도 젖고. 비 오는 날에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지만, 이미 오토바이를 타고 나온 상황에서는 조심해서 타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을 때는, 근처 카페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비가 그칠 때까지 여유롭게 커피 마시며 기다리는 것도 좋았다. 보통은 나도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서둘러 우비를 둘러쓰고 다시 도로로 향했다.


photo@ https://www.123rf.com/


비와 시련 


우기의 국지성 폭우는 일정한 시각에 1~2시간씩 쏟아지고 거짓말처럼 맑게 개였다. 그래서  시간만 피해서 외출하면 괜찮은데, 폭우는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맞춰 쏟아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점심시간을 전후해 쏟아지는 비는  하교시간을 교통 지옥으로 만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퍼붓던 비가  며칠 잠잠해지면 더 최악의 상황이 된다. 밀린 비가 새벽부터 쏟아지면 이른 아침부터 잘로(zalo)나 카카오톡 학부모 단톡방은 학교 주변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메시지로 정신없다.

 

"꿕흥(Quoc Huong st.) 쪽에 물이 도로에 넘쳐서 바퀴가 다 잠겼어요. 꿕흥 말고 다른 길로 오세요"

"타오디엔 거리는 꽉 막혔어요. 다른 길로 돌아서 가야 해요."

"학교 정문 쪽에 물이 넘쳐서 차가 갈 수 없으니, 길 건너서 내려서 애들 안고 가야 해요"


그런 날에 아이들은 어김없이 학교에 지각을 했다.

물에 잠긴 꿕흥st. / 아빠는 심각한데 아들은 신난 우기 아침 등교 풍경


하교 시간에 비가 떨어지면 타오디엔 거리는 삽시간에 주차장을 방불할 만큼 교통 지옥이 되었다. 평소에도 교통 체증으로 악명 높은 타오디엔 거리지만, 비가 와서 길이 잠기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평소에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비 때문에 최소 1시간도 넘게 걸렸다. 학교는 안전상의 이유로 보호자가 도착하기 전에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1시간도 넘게 걸려서 겨우 학교에 도착하면 기다리다 지쳐 울먹이는 아이들을 달래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의 등하교는 이래저래 곤욕이었다.  


호치민의 홍수는 집을 구할 때도 영향을 미쳤다. 우기에 길이 잠기면 건물뿐 아니라 자동차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바퀴가 물에 잠긴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아무리 차 바닥을 방수코팅을 했더라도 차의 컨디션은 최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2군 쪽에서 집을 구할 때 편의 시설이나 주변 환경뿐 아니라 운전기사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우기에 침수되지 않은 위치의 아파트를 구했다. 새벽에 비가 쏟아진 날 아침에 등교하다 보면 학교 입구와 아파트 입구가 물에 잠긴 학교를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운전기사 말을 듣기를 잘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호치민 홍수의 원인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1~2시간씩 퍼붓는 국지적인 폭우로 인해 일시적으로 도로가 물에 잠길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물이 빠져나가지 않는 배수관이었다.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더라도 물만 제때 제대로 빠져나간다면 침수가 일어나지 않을 텐데, 한번 고인 물은 흘러 나가지 않고 고여 있거나, 배수로로 흘러들어 간 물은 때로 역류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년째 타오디엔 거리는 홍수에 대비한 공사가 진행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공사 덕분에 가뜩이나 심각했던 타오디엔 교통체증은 더 가중되었다. 어쨌든 우기를 앞둔 꾸준한 공사 덕분에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고인 물이 예전 대비 빨리 빠져나가긴 했다. 호치민은 여전히 폭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호치민시가 홍수에 시달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낙후된 배수시설 탓만 하기에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흥건한 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찾아보니 호치민 홍수의 주요 원인은 만조시 발생되는 밀물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1990년 이전의 호치민은 동나이강이나 사이공강의 만조에도 범람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사이 무슨 변화가 생겼을까. 남부지역은 원래 지반이 취약한 지역인데, 무분별한 난개발로 지반이 더 약해지고, 해수면까지 상승하여 밀물이 육지까지 범람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기후 변화, 도시화, 저지대의 만조 현상 등이 호치민 홍수의 원인이었다. 만조가 범람에 영향을 미친다니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사이공 강변도로를 따라 출퇴근을 하다 보면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강물이 불어나 있거나, 배가 지나갈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물이 바닥을 보이고 있을 때가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도 만조 때문이지 않을까?






겨울 내내 잠잠하다가 입춘이 지나 내리는 비를 보니 문득 호치민의 우기가 생각났다. 

처음엔 그 눅눅함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익숙해진 것 같다. 

올해의 호치민은 우기에도 안녕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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