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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Jul 24. 2019

인생의 두 번째 방학

육아휴직의 반복되는 아침

올 초 겨울 육아휴직의 일과를 써볼까 하고 끄적였던 작가 서랍 속 글을 꺼내놓는다.


발행할 수 없을 때 독자가 없으면 어떠냐는 심정으로 육아를 기록하며 글쓰기 수행으로 힐링하자는 마음으로 막연하게 끄적였던 글. 책 한 권 읽지 못해 눈물을 머금던 올 초의 모습이다. 주변에 독서의 간절함을 호소했고 지금은 책 읽을 시간을 조금이나마 확보했고 얼떨결에 브런치 작가도 되어 행복하게 글을 기획해보는 꿍꿍이도 짠다. 느리지만 끝없이 반복적일 것 같은 삶은 나아지고 있다.


십 년도 넘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십 년 전 유학시절에도 빈 시간은 있었지만 비어 두고 살질 못하는 기질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읽고 논리를 뽑아내서 써야만 하는 논문의 중압감을 피해 간 옆 나라 여행들도 모두 미술 프로젝트 중심으로 계획을 가지고 떠났었고 자투리 시간들 조차 문화원 사서와 전시 아르바이트로 더욱 가득 차게 살았었다.


잘 노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던 내게 아기는 기나긴 휴직을 선물했고 그 선물을 굳이 괴로움으로 풀어내고 있는 날 발견했다.


서랍 속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찍— 꽉꽉. 또르또르또르르. 삑삐익삐익..


공간을 가득 채운 새소리에 잠이 깬다. 다른 공간에서 이동한 듯 생경함에 눈이 떠진다. 아직 밤이 다 가지 않은 퍼런 새벽의 우리 집이다. 눈이 왔네.


23개월 된 아기는 옆에 찰싹 붙어서 쌔근쌔근 평화롭게 자고 있고 아기 발차기에 차여 새벽에 잠이 깬 신랑은 혼자 안방 침대에 누워 자고 있다.

돌고 돌며 잠 여행을 다니는 아기에게 나 또한 몇 번이고 차였을 텐데 이제는 심하게 차여 하얗고 번쩍이는 별이 보이지 않는 한 쉽게 깨지 않는다.

상쾌한 아침이 왔으니 활기차게 일어나 보자고 머리로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몸에 기록돼버린 피로의 무게는 땅으로 다시 날 흠씬 잡아 당긴다.


시간은 하릴없이 흐르고 있고 누워있기를 한 채로 머릿속에 줄줄이 지나가는 반복되는 일과들을 떠올린다. 아기 세탁기 돌리기, 어른 빨래하기, 간략한 청소, 이불에 햇살이라도 쬐어주고 털어내야 아기 엄마로서 청결을 유지하는 것 같은 일말의 타협 그리고 아주 잽싸게 여기저기 나뒹구는 장난감을 아기방으로 위치시켜 정리하기. 각종 교통수단 장난감들. 자동차 기차 비행기, 각종 블록들. 나무블록 플라스틱 블록 캐릭터 스티커들, 온갖 인형들을 끄집어내고 난 다시 제자리로 복귀시켜놓기. 저녁은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 냉장고와 냉동실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내 눈은 이미 스캔을 마쳤다. 구입할 식재료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마트 갈 시간을 생각한다.


이렇게 누워있기를 하다 보면 7시 20분 알람이 울리고 신랑이 먼저 안방 침대에서 일어나 나와 인사를 건넨다. “잘 잤어?” 눈 근육의 끔뻑.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종종 우린 서로 두들겨 맞은 것 같다며 아픔을 공유한다.


육아의 한가운데서 육체 고통을 호소한다. 봄이 지났고 여름인 지금도 여전히 몸은 세세하게 더욱 구체적으로 아프지만 생각해보면 이 또한 나아졌다. 적응과는 또 다른 어떤 것이다. 팀 워크 같은 것이랄까 주변과의 조응을 이루며 육아를 진행한다. 큰 단점은 쉽게 데이트를 하던 신랑과 굉장히 세밀한 계획을 가지고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쉽던 저녁 외식, 예쁜 카페나 같이 보고 싶은 전시를 함께 가보긴 참 어려워졌다. 이 또한 나아지리라 비록 느리겠지만. 지금의 내가 나아졌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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