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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Aug 09. 2019

나도 모르게 나를 속이고 나를 만들기

들여다보면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내 눈에 들어온다.

대기업 취직해서 고생하느니 행정고시를 봐서 공무원 된다고?! 세종시 정부청사에 서울대 출신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각해보니 IMF이후 다른 업종보다 자기 생각을 펼치고 소위 안정적인 삶까지 누리려면 행시 합격하고 바로 5급 공무원이 돼서 사무관으로 발령받아 일을 하는 것이 이 시대 출세의 지름길인 듯싶다.


예술에 흥미를 갖고 있던 내게 아무도 이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문화예술 정책 수립과 행사 운영을 국공립기관의 안정적인 예산을 받아가며 기획할 수 있는데 말이다. 물론 사업 기획은 정책과제에 따라 방향을 맞춰야 하는데 언어의 마법으로 조금만 고민하면 무궁무진한 것들이 다 가능하다.


2002년 대학교 3학년부터 운 좋게 학교의 제안으로 갤러리 인턴 일을 하게 된다. 그 사회생활을 시작으로 작년 육아휴직 전까지 줄기차게 크고 작은 일을 한다. 유학시절 조차 출국한 해에 바로 학교에 입학하고 귀국한 달까지 논문을 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와 한국 일이 맞물려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일이 이어졌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현지 문화를 알아가기 위한 여행이나 탄탄한 어학연수를 통하지 않고 악착같이 타국에 내리자마자 대학에 들어갔어야만 했을까 그 길 밖에 없는 냥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말이다.


유럽인들과 동일한 나이대로 입학하여 외국인이라서 언어 배우느라 인생 낭비를 안 했다는 생각으로 굉장한 성공감을 만끽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합격을 한 것 만으로 ‘이제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스텝의 좌표를 잃고 나를 기다린 듯한 선물과 같은 커다란 좌절감에 잠식된다.


그래. 내 꿈은 어쩌면 거기까지였다.


국내 학부를 졸업하고 다시 해외 학부 마지막 학년에 편입된 경우라 왜 내가 이걸 다시 배우고 12과목을 일년내 패스해야 하나 갈등이 심했고 자구심이 들면서도 학업에 모든 삶이 초점 맞춰졌다.


너무나 버거운 학업에 안일한 유학생활을 하는 한국인과는 인사조차 말도 건네지 않는 사람으로서 일상을 보냈다. 예술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비예술적인 사고와 타인의 문화에대한 이해력은 떨어지고 아주 얄팍한 포용 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많은 기회를 좁혀놓고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는다.


프랑스에는 바칼로레아라는 대학입시 논술시험이 있는데 그 질문들 중 인상적인 것이 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나를 속일 수 있는가’


인생의 질문이다.


내가 나에게 오히려 집중하지 못한다.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생활 3개월차파리대학 합격 후 소위 '진짜 내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이 고민에 대한 답은 여전히 없다.


질문뿐인 삶에 대한 고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지속되는 삶이 인생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렇다고 최근 정부기관 4.5급 전문임기제 공무원이 되면 고민의 많은 부분이 해소될 까 싶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십년은 거뜬히 다닐 수 있다는 정보에 이정도면 내게 있어 정규직이구나 생각해서 택한 그 직장은 도무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평소 직장에 평생 다니는 것은 자기 계발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방목시키고 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 해야 한다 저것 해야 한다 타인이 나의 삶에 채찍질을 가하지 않더라고 스스로 나를 가차 없이 등 떠밀었고 결국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은 3년 10개월로 마감을 한다.


그래도 공무원이 되면 안정적이고 좋지 않냐는 질문에 눈에 불을 켜고 공무원이 얼마나 힘든지 만삭이 되어서도 대체할 수 없는 업무 특성상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힘주어 말하곤 했다. 내가 쉬면 남의 일이 두배 그 이상이 된다. 내가 하면 1시간 내 끝날 일을 남이 하면 일을 파악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많은 시간이 투여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눈 딱 감고'의 자세가 나올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민폐다.


출산 휴가 후 바로 복귀한 나는 누군가에 의한 부당함이 아닌 한국사회 조직이 주는 무언의 폭력과 이해하지 못하는 정서에 대하여 격멸했고 공무원으로서 사명과 거리가 먼 일처리와 묵인해야하는 억눌리는 상황 그 모든 불만족의 나날들로 상한 정신만큼 몸도 점차 상해져가고 있었다.


자아실현을 직장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지만 어떠한 마지노선을 밟았을때 그 저릿함에 순식간 정리가 되었다. 심지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스치는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가장 곁에 있는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처로 변하고 있었다.

   

오늘도 고민을 한다.


최근에는 살아가는 힌트를 얻기 위해 들뢰즈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데카르트의 ‘성찰’을 들여다본다. 정확하게는 육아와 엉켜 잠깐 만졌다가 놓았다 다시 잡았다 놓기를 반복한다. 한 장이나 한 문장을 읽기도 한다.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잘 들여다보면 내 안의 네잎 클로버가 무엇인지 보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나를 속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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