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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Oct 30. 2019

꿀 백수 생활 유지 비법

P.S. 실업급여 받는 중

글쓰기 근육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브런치 공간에 더욱 자주 들어오고자 <나만의 푸닥거리>라는 제목으로 떠다니던 몇 개의 글을 묶음 처리했다. 각박한 삶에서 숨 좀 고르자며 퇴사하고 제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찾다가 소소한 해법으로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또다시 각박함을 느끼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나의 문제이다. 규칙적인 글쓰기 발행에 압박을 주며 실행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을 느껴보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내 삶에 과제를 던지지 않는데 내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과제들이 하루 일과 가운데 산재해있다.


가히 백수가 제일 바쁘다는 말을 실감 중이다. 보태어, 아무것도 안 해도 많은 것을 하고 있는 백수는 괴롭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자유로운 공간이자 남도 아닌 내 스스로가 제일 잘 쏟아낼 수 있는 내가 아는 이야기들을 쓰면서 치유받고 일상을 환기하는 효과를 '나만의 푸닥거리'라는 표현으로 불러본다. '쓰기를 통한 액땜'이라고 하자. 나만의 푸닥거리 짓을 찾아 노력하여 계속하며 삶을 환기시키자. 내 온몸에 넓게 달라붙어있는 각박함 전염 세포들을 털어내 보자.




3개월의 출산휴가 꿀 수당과 1년의 육아휴직 수당이 끝난 후 당연한 듯이 퇴직으로 바로 이어졌다. 육아휴직 수당은 150만원이었으나 실질적으로 받는 매달 급여는 세후 60만원 가량이었다. 나머지는 복직 후 6개월 일한 후에 지급해준다고 하는데 그 금액을 위해서 결코 어떻게 나온 곳인데 '그곳으로' 차마 복직할 수 없었다.

 

십 년 넘는 직장생활 퇴직의 즐거움은 길고도 잔잔하다.


긴 직장생활로 이직을 준비하지 않고 퇴직을 꿈꾸는 분들에게 감히 말할 수 있다. 긴 직장생활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당신이라면 월급만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인간형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이십대 초반부터 일이 잘 풀려 사십대 초반이나 삼십대 후반까지 일한 여성이라면 퇴직의 맛을 권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달다! 육아휴직 포함 백수생활 2년 차가 감히 하는 말이다. -아직 2년 차라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우려했던 것보다 아주 심각한 경제란으로 괴롭지는 않다. 평소 씀씀이의 1/4로 지출을 줄이는 것, 안하던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것 등이 다소 즐겁지 않지만 괴로움의 본질은 시간의 주체에 있다.


다시 말해, 시간에 끌려다니며 살았던 삶을 정정하기!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회사마다 자의 반 타의 반 정해진 시간들로 내 삶을 조각조각 연이어 숨 가쁘게 배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각종 회의시간, 각종 서류 제출 데드라인에 딱 맞춰 작성을 기막히게 혹은 기본 수위로 완성하고 메일링, 전화 응대, 현장 체크, 펑크 난 업무 조율 및 재 스케쥴링 등 다이어리에 빼꼭하게 적혀놓은 일정들과 해야 할 업무를 하나씩 처리해나가며 살았던 삶을 주도적으로 매일 시간을 편성하여 사는 것이 가장 문제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시간표로 짜서 실행하는 것이 쉬울 듯 하지만 이것의 속성이 결코 아무도 날 독촉하지도 않고 오늘 할 일을 내일 혹은 한 달 뒤로 미뤄도 되는 아주 즐겁지만 굉장히 위험한 덫과 같은 것이다.


내 삶에 플랜B는 없다. 


단지 마음먹은 계획을 천천히 실행할 뿐이다. 업무 중에 샘솟던 수많은 대안이나 세밀한 환경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삶은 나만 밟고 지나가는 길인 것이다. 하여, '산다는 것'에 있어 '전략적인 삶'이란 실행이 참으로 어렵고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백수의 완전체를 무일푼 무노동이라고 할 때 내 경우는 완전한 백수는 아니다. 자칭한 '꿀 백수'라는 것은 약 18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기 시작한 주변 지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반 백수이다. 백수의 완전체가 되기 전 단계이자 앞날을 세세히 살피지 않고 현재를 맘껏 즐기는 카르페 디엠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카프레 디엠(Carpe Diem)'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나는 이를 '갓 백수가 된 자들이여! 현재를 만끽해라!'라고 해석하고 있다.'-


백수 생활 중 작년 크로아티아 여행 때 만난 단어로,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삶의 방식 '프야카(Fyaka)'도 있다. 유유자적 삶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시계와 다르게 슬로 모션으로 살아가며,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 양질의 삶을 사는 방식이랄까. 전전긍긍 살아온 내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은 질문을 던진 단어이기도 하다. 이 여행으로 삶에 가치를 두는 기준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이 단어는 '아무것도 열망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심리 물리학적 상태'를 일컫는 용어인데 달마티아의 중심이자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스플리트' 도시에서는 타지인들에게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현지인처럼 평온한 삶을 잠시나마 느껴보라며 사용하고 있다. 로마 왕이 바라보았던 바다와 햇살의 아름다움, 그리고 농사 작물에 대한 감사함을 현대인들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소확행과 유사한 뜻으로서 덴마크의 '휘게', 스웨덴의 '라곰', 프랑스의 '오캄'이라는 단어도 찾을 수 있다. 이런 단어들이 세계 곳곳,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좇는 것은 본능이자 인간의 보편성이다. - 백수를 갈망하는 우리는 트렌드이다.-


자! <꿀 백수 생활 유지 비법> -'생활 유지'인 즉, 즐기는 것이다.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나만의 편안한 밸런스를 찾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비중을 시간적으로 배정해두고, 신체 컨디션에 맞게 하루의 일상을, 일주일, 그리고 한 달, 일 년의 계획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래. 그 어려운 전략적인 삶을 세워보는 것이다.  


1. 실업수당은 잦은 특강이나 고정 수입의 확실한 아르바이트가 없는 한 가능한 한 마지막 회차까지 받자.

2. 맘 속에 품어 놓았던 버킷리스트를 적어 내리자. 산발적으로 적다가 Depth를 나눠 더욱 구체적으로 적자.

3. 바빠서 집 정리를 못하고 살았을 당신, 안 쓰는 물건은 이제 싹 다 정리하여 중고물품으로 팔아 현금화하자.  

4. 버킷리스트에서 다섯 가지 이상을 실행하자. 그중 생각만큼 즐겁지 않은 일은 바로 그만두자.

5. 그간 연락 못한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 시시콜콜한 수다 시간을 갖자.

6. 집 근처 산책로를 정하고 사색 시간을 갖자.

7. 일상생활 속 문장이나 단어를 수집하자.


위 일곱 가지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나만의 꿀 백수 생활 유지 비법이다.

마지막의 경우, 꼭 도서관 서고에서 책을 펼쳤을 때뿐만 아니라 영화나 광고 문구를 보다가 길을 가다가 문뜩 떠오른 문장이나 단어를 수집하는 습관을 기르면 백수 생활에서 나를 더욱 알게 되는 시간이 된다. 백수의 특권이라고도 생각한다. 제로의 시간이 되어 흰색을 느껴보자. 예술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말한다.

흰색은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다. 그것은 젊음을 가진 무(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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