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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Aug 31. 2019

다른 시간들을 같이 보게 하는 전시

미술사를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 N.6

이미지 출처 : https://www.lemonde.fr/culture/article/2012/12/04/un-laboratoire-pour-reinventer-le-musee_1799745_3246.html


전시에 대한 여섯 번째 단상으로는 '전시의 힘'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루브르 박물관이 오픈한 <시간의 갤러리>의 전시방법은 다양한 시간대가 공존하는 소장품을 나열의 근거로 동시대 시간성을 부여하고 어느정도 예측가능해진 미래에도 소장품 본질이 가장 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 본연의 모습을 자아내는 방식에 대한 실천이다.


가히 박물관의 본성인 영원성을 소장품에 부여하는 계보를 잇는 대표 전시인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radical) 방식을 가지고 오히려 미래를 예측하는 루브르에 주목해보자.


-사실 은유 작가의 책에서 인용한 테드 쿠저의 한 문장이 심장을 쿡 찔렀다.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여 정보는 부족하지만 바라보는 시점들과 이를 통한 단상들을 일단 써내려간다.-

 

루브르 박물관에게 소도시를 살리라는 미션이 주어진 대대적인 사건이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을 폐광 이후 쇠락한 프랑스 북부 소도시 랑스(Lens)에 2012년 문을 연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인 문화예술의 지방분권화 프로젝트인 루브르 박물관 분관 개관은 르몽드지에 '박물관을 재발견하는 실험실'(Un laboratoire pour réinventer le musée)이라고 한 줄 논평과 같은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프랑스 마르세유나 리옹 같은 제2의, 제3의 도시도 아니고 지중해를 끼고 있는 니스와 같은 휴양지도, 예술가들이 사랑한 액상프로방스도 아닌 곳이다. 관광산업에 전혀 경험도 없거니와 예술과 거리가 먼 소도시에 세계의 대규모 관광객을 몰아다 줄 국가 문화예술기관이 자리 잡은 것이다.


세계적인 박물관의 분관을 지을 도시를 선택함에 그 자신감이 거침없다. 실험실이라고는 하지만 성공의 확신과 그 준비성이 철저하다. 루브르 분관의 상설전시 방법론이 그 해답이다. -상설전시라 함은 '영구적(Permanant)'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영구적(quasi-permanant)'이 정확하다. 랑스 또한 루브르 본관에서 600여 점 들여와 2-3년 주기로 교체하는 전시형태이다.-


이번 분관의 전시방법을 획기적인 시도라고 평하기에 이미 소우주와 기억술의 전시방법을 가지고 여러 세기에 걸쳐 실험을 해 온 바, 상설전시로 명명한 '시간 갤러리'(La galerie du temps)는 학술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철학자 질 들뢰즈가 말한 크리스탈 이미지가 이런 것일까? 다른 수준의 시간 단면들이 우리가 서 있는 찰나 즉 한 화면 속에서 표출되어있다. 단면 각각 깊이와 방향은 다르지만 서로 이웃되어 단번에 보여진다. 마치 크리스탈을 들여다보듯 말이다.


하나의 작품마다 둘러싼 짧지만 열려있는 입체 동선으로 각각의 다른 특성을 보유하는 동시에 서로 상충되며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를 한눈에 보여준다. 120미터인 상설전시 공간은 긴 직사각형 형태인데 전시장 벽은 알루미늄의 비물질 시각성을 활용하여 작품과 더불어 바라볼 때 화면이 이어지는 효과를 연출한다. 그 공간에 각 연대기별 작품들이 운명적으로 시간의 부름을 받고 자리에 출석하고 있는 형국이 응고된 시간만을 강조하거나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 명작인 소장품들로 예술사 팝업북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대기별 예술사조가 그야말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한 발자국 이동만으로 시간여행자가 되어 작품 둘레를 위성과 같이 돌며 관객들은 작은 소용돌이와 같은 현재의 운동을 만들어낸다. 개입하는 듯 보이지만 철저히 개별 작품마다 시간성은 존중받고 있다. 관객의 운동은 방향과 기울기에 따라 우연하게 바라보는 작품과 한 시야에 들어와 버린 이웃하는 서로 다른 시간의 작품들로 각자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시간의 꼴라쥬이자 관객 마다 다 다른 고유의 감상을 이끌어내는 현장인 것이다.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삶에 대한 태도나 서사의 풍경과 하모니를 이뤄 관객이 감상으로 만들어내는 풍경이자 전시에 대한 피드백이다.


관객의 사전 지식과 취향이 발동하는 찰나이다. 기획한 큐레이터조차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서술이 대거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관객의 진정한 개입 Intervention이다.


파리에서 한 시간이 걸리는 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분관과 자본으로 쌓아 올린 아부다비 도시에 만든 또 다른 루브르 박물관 분관이 서로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소장품을 전시할지 지속적으로 주목해볼 일이다.


전시의 정치적인 성격은 그 본령이다. 장착해 둔 전시방법이 관객에게 유효한 기간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시대나 문화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박물관 미술관은 각양각색의 노출 방법을 실험 중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루브르 궁이 박물관으로 개관을 하며 지향한 '태피스트리 tapestry' 전시방법은 당시 죽은 자와 산 자 작품을 같은 벽에 빼곡하게 직물과 같이 전시하여 계급 상관없이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동일 학파(일명 에꼴 école), 그리기 방식이 같은 작품으로 구분 지어 방마다 '아크로사쥬 accrochage'  방법인 벽에 작품 걸기로 평면 회화들을 진열한다. 중국 서안 진시황릉 병마용 박물관은 죽어있는 유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활동 중인 고고학 archeology in action' 전시방법을 취한다. 같은 시대 선상의 로마시대 유물전도 함께 기획하여 동서양을 견준다. 다섯 번째 전시 이야기에서 언급한 예술품 애호가나 식물학, 동물학에서 택한 '형태 유사학 morphology' 전시방법도, 일반적인 '연대순 chronology' 전시방법 모두 그 시도들이다.


전시에 있어 영구적인 것은 없다. -상설전시 permanant exhibition 단어의 모순을 염두한 문장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소장품 collection은 영구적이다.- 선형적으로 정리하여 시계로 확인하는 시간은 인간의 발명일 뿐 시간은 비선형적이고 공간 속에서 공존한다. 이러한 가운데 전시는 어떠한 것을 본다는 것의 방법적 탁월성을 추구하는 실험실이고 연구자인 큐레이터는 첫 번째 관객이다.


전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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