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를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 N.2
이미지 출처 : John Schiff, Installation View of Exhibition ‘First Papers of Surrealism’ Showing String Installation. 1942. Gelatin silver print. Courtesy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 Art Resource, NY.
갤러리 하얀 벽이나 미술관 공간의 작품 진열만을 전시라고 생각하는 일반 대중들을 위해 전시에 대한 생각을 약간씩 확장해보고 이를 계기로 전시를 좀 더 심층적으로 알아가기 위해 글을 시작해본다. 일반적으로 ‘전시’라는 용어를 미술 분야가 독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술을 담아내는 것만이 전시로 인정받는 것일까? 우리가 쉽게 접하는 길거리 이젤 전시는 무엇인가? 대형 전자 박람회는 무엇인가? 미술전시공간에서 언제부터 퍼포먼스가 수용되었을까? 이미지 없이 글이나 책으로만 이루어진 전시는? 전시의 기본 요소들을 살펴보고 가능할 수 있는 전시의 스펙트럼과 예술에서 말하는 전시에 대해 다시 살펴볼 생각이다.
국내 예술전문 매거진의 전시 리뷰나 작품 포커스, 특집기사 등을 읽어봐도 작품 평론이나 작가 소개를 위한 작가론이나 프리뷰 전시 이미지 클립이 대다수이다. 작품세계를 알아가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겠지만 전시 속 하나의 오브제를 주제 혹은 의도, 맥락에 맞게 어떻게 펼쳐놓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볼 수 있게 장착해놓았는지 전시 방법론에 대한 언급은 참으로 불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전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무엇을 요소로 취하는지, 그 태생과 둘러싼 이론과 실습들을 호출하면서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전시에 대한 단상, 그 첫 번째 메모이다.
전시의 역사라는 것은 인류의 시각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다. ‘전시’라는 것은 ‘지각하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 앞에 멈춰 서지만 결국 전시는 흐름이다. 그 안의 무슨 일을 알기 위해 우리를 전시장 안으로 들어와 걷게 하고 나가게 한다. 이는 온·오프라인 혹은 내·외부 전시장 모두 적용되는 얘기이다. 책과 같이 갑자기 점핑되어 다른 페이지를 열 수 없다.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다만, 온라인 전시 속 '클릭(Click)'에 의한 관람방식은 임의적 접근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사전적 의미의 전시는 '생각이나 이론에 대한 이해 가능한 묘사나 설명'이다. 펼치려는 생각이나 이론에 대해서 명백하고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프랑스어로 ‘엑스뽀지씨옹’이라고 읽히는 전시 Exposition 단어를 살펴보자. ‘ex 엑스(외부에)-position 뽀지씨옹(놓음)’으로 곧 ‘Exposer 엑스뽀제’라는 ‘진열하다 전시하다 노출되다’ 뜻의 동사에서 온 명사이다. 다시 말해, ‘외부에 노출된 어떤 상태’이다.
‘관객이 어떤 상태에 들어가는 움직임’, 곧 ‘전시를 관람한다.’는 것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 메를로 퐁티가 말한 ‘살은 존재의 원소’이고 ‘지금 여기에 있는 신체의 감각능력이 존재임’이라는 이론의 실천물이다. 의식의 텍스츄어로서 전시장에 들어가서 지각을 하는 것이다.
전시는 ‘관객, 공간, 작가나 작품 또는 보여주고자 하는 것’ 이렇게 삼요소로 구성된다. 이에 있어서는 영국 연극연출가 피터 브룩이 말한 연극의 구성요소와 사뭇 다르지 않다.
『빈 공간』의 아름다운 첫 페이지 첫 문장을 인용한다.
“아무것도 없는 어떤 빈 공간을 가상하고 그것을 빈 무대라 불러보기로 하자. 어떤 이가 이 빈 공간을 가로지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연극 행위로써의 구성 요건은 충분하다.” - 11쪽, 제1장 죽은 연극 中
‘빈 무대, 퍼포먼스(빈 공간을 가로지르는 자), 지켜보는 자’만 있으면 연극이 성립되듯-사실 피터브룩은 빈 공간을 가로지르는 행위보다 '배우'를 요소로 포함시키고 있지만- 전시도 그렇다. 기본적인 이 세 가지 요소가 확인되면 우리는 어떤 내용을 담던 콘셉트와 무관하게 그 모든 것을 '전시!'라고 부를 수 있다.
- 곧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