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로디 옹그 Aug 14. 2020

버스에서 내려야하나

지난 8월 6일 10시-12시 사이 일어난 일에 대한 회상

코로나로 지인과의 만남은 짧은 동선 내에서 해결하려는 마음에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삼십 분 내 오전 약속을 잡았다. 결과적으로 두 시간이 걸려 오후로 넘어갈 때 도착했지만 말이다. 정거장이 보이면서 잡아타야 하는 버스가 삐쭉 모습을 비춰 냅다 뛰어 올라탔다. 왠지 이럴 때 하루 일진이 좋을 것 같고 더위로 땀은 나지만 버스라는 커다란 통 속으로 나를 받아 태우고 이동한다는 묘한 포근함과 수용됨에 온 근육들은 꿈질대며 룰루랄라 신이 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응암동으로 접어들더니 은평구청까지 한 시간 동안 다섯 정거장 밖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지만 버스에 열댓 명의 승객은 모두 다 계속 앉아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잠시 밀리겠거니 조만간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마치 그 순간 그것은 종교적 믿음과 같다. 거의 멈춘 버스 안에서 정거장이 나오길 기다리지만 정거장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버스 창 밖으로 걸어가던 분은 저 멀리 시야 밖으로 속도를 낸다. 폭우로 올림픽대로 통제가 되었다는데 그 여파인가, 어디 교통사고가 크게 났으려나 아직까지 지난 8월 6일 은평구 응암동 인근 교통체증에 대한 대충의 이유도 모른다.


당시 신기했던 것은 사람들이 별 불평 없이 조용하게 생각보다 잘 타고 내렸다는 것이다. 사회에 이런 것조차 불만이 없는 느낌, 사회에 사소하게나마 기대가 사라진 느낌. 아주 사소한 사회적 스트레스가 오히려 불필요하다는 것을 체념한 느낌.


예전에 암스테르담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몇 백 년 만의 폭설로 물을 뿌리면 빙수 얼음과 같이 흩날리는 마법과 같은 날씨였다. 비행기는 며칠이 지나도 뜨지 못했고, 트램도 파업과 같이 다니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 발만 자유로웠다. 걸어서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걸어 다니며 출장 계획과는 일체 다른 동선을 밟으며 고생이라는 생각은 접어두었던 기억이 있다. 중국 출장 때도 하얼빈에서 폭설을 맞아 비행기 티켓을 날리고 개인 돈으로 기차 티켓을 기억도 잘 안나는 이상한 경로로 사서 북경으로 돌아가고, 런던 출장 때도 하필 파업이라 어마 무시하게 일방통행으로 돌아가는 택시만 타고 다닌 경험들이 즐비하다. 예상한 시간 안에 내 육체를 이동해주는 교통은 자주 그렇게 배반을 한다. 8월 6일도 그런 경험들 폴더에 추가된, 얼마 후 자동 삭제될 그런 날이다.  

 

코로나로 느리게 사는 것에 익숙해졌는가에 대한 생각도 있지만 버스 안에서 참았다고도 볼 수 없는 그러한 덤덤한 태도들이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중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탄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 희곡 속 배우가 된 느낌으로 나는 중얼댄다. 이는 버스 밖의 이야기이긴 하다. 밤을 새워서 버스가 오길 기다렸는데 결국 그곳은 버스정류장이 아니었다는 내용의 대본.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던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소신 있게 목적지로 걸어가는 버스 밖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느릿느릿 가긴 가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이 바퀴달린 버스를 추월한다. 묵언을 하고 있는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고 목적지를 변경하지도 약속을 취소하지도 않고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을 연동시켜 함께 흘려보내고 있다.


버스 안 사람들은 생각보다 차분하게 상황을 정정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가려는 길을 마저 간다. 사이보그처럼 우리에게 능동적인 흥분은 없다. 어쩌면 작금의 예술처럼, 대학처럼, 회사처럼


버스의 그날 그 시간 상황으로 S미술관이 떠오른다.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라는 질문이 올해 내내 잠식되어 있는 탓일 수도. S미술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채용에 관련된 것이다. 마치 아침 드라마 주요 소재로서 치정이 단골이듯 조직에서 자주 문제시 삼는 채용.

S미술관은 모두 같은 대안공간에서 일했던 P출신 사람들로 실장, 팀장이 오래간 근무하는 것은 알았지만 발 없이 내 귀에 도착한 풍문은 이제 인턴까지도 그 출신으로 채용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헤쳐모여’ 할 정도로 대단한 조직이었던가. 전국의 미술인들이 설마 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 ‘이렇게 해도 아무도 뭐라 못해’식의 강력한 멘털로 어느 선을 넘어서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몇십 년 된 미술부 기자도 관련 기사 소식이 없다. 우리는 코로나 현황판이나 일기예보만 매일 쳐다봐야하는가.


로보틱스 사회에 맞춰 고철과 같이 버스나 타고 정거장에 맞춰 승하차를 수행했어야 했나 싶다가도 자유로운 내 다리로 하차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허나, 하수도 뚜껑 솟아올랐다 금방 가라앉듯 무기력증에 샤워되는 미술. 그것 참 나른하다.

 

무관심으로 철저히 장착해야하는가. 오늘도 글쎄. 글쎄. 글쎄.





매거진의 이전글 자문의 기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