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그 모든 작품을 만들어내는 힘

언택트 시대 예술 디알로그 No.16

by 엘로디 옹그

‘나이가 들면 감흥이 없다’라는 말을 어르신들이 하십니다. 뭘 봐도 재미없다. 그런 의미와 상통하겠지죠. 최근 무엇에 전율을 느끼며 감화(感化) 되신 적이 있나요? 바로 이거야! 하는 느낌. 이것 참 재미있는데! 그것과 혼연일체 되는 느낌 말이죠. 신체적인 감각이 둔해져서 늙는 다고 하죠. 이 말은 스스로 떨림을 발견 못해서 관심마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은 아닐까요.


매머드 비엔날레급의 다수 작품이 있는 전시이든 작은 공간의 전시든 걸어가는 속도로 관람을 하는 저로서는 무엇에 감(感)하는 일이 점차 드물어지는 것을 알아채고 있습니다. 작품 앞에 서서 시간을 못 느낄 정도로 빠지는 일은 아주 간혹 일어나지요. 오히려 몇 장의 책을 읽었을 때 문장에 꽂히거나 며칠동안 그 문장이 머릿 속에서 안 나갈 때는 곱씹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황당하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낯선 단어들끼리 들러붙어 간결한 문장을 만드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의 새로운 지각을 열어주는 물체, 상황, 인물, 징후, 문장은 무엇일까요?

말초 감각까지 미세하게 살아있어 반응에 민감하며 남다른 관찰력을 가진 여성 작가 전미래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다중을 본인의 극(極)으로 끌어들이는 자력을 가진 그녀. 그녀의 예술이 나오는 근원지, 그녀의 세계관을 들어봅시다.



질문 1 >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이후 어떻게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답변 1>

전업 미술작가이고 코로나 전 2018년부터 아기 육아를 하면서 코로나가 심화 된 가운데 작업 활동도 활발히 할 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 프로젝트가 들어와서 작년 말부터 글쓰기도 했고 작업을 다시 시작하긴 했죠. 큐레이터들과 같이 얘기를 하는 중인데 아무래도 코로나가 심각해지다 보니 전시장인 화이트 큐브로 관객을 들여오는 것이 기피되고 있죠. 언택트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에 작가들도 맞춰져서 작업방식을 새롭게 고안해야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어요.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로서 영상이나 오브제로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보니 퍼포먼스 자체를 2채널 비디오 작업으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든지 설치작업을 같이 좀 해보는 것으로 제안 받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실질적으로 작업을 하는 것은 텍스트 작업과 드로잉이긴 해요.


최대한 사람들 간의 접촉을 피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예술 작품을 노출시킬 수 있는 방법을 구상 중이죠.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대중 미디어의 활용과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변주하는 것을 모색하고 있어요. 사실 이런 시대에 예술을 보여주는 제 활동은 미술계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이러한 질문들을 교환하며 서로 예술관을 공유하고 상황을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의 충돌을 일으키는 것들이 서로 간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질문 2 > 현재 하고 계신 일로 제일 힘들거나 곤란한 점은 무엇인가요?


답변 2>

시간과 체력이 많이 부족해요. 작업할 시간이 너무 없어요. 하루에 끊기는 맥락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기존의 10시간 필요한 작업이 실제는 20시간 이상 필요한 상태에요. 그러다보면 지치고 결국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작업 방향에 대해서 설치나 비디오 작업 쪽으로 권유를 받기도 했거니와 화이트 큐브 안에 설치나 퍼포먼스 하는 작업으로서 진행하기 힘들다 보니 요즘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많이 기울이고 지내는 편이에요. 이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보고 있어요. 모두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이 상황이 겁나고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3 > 언택트 시대가 되어 예술 측면에서 나아진 점이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답변 3 >

미술관은 팬데믹으로 그 전날 사전예약을 하고 현장에 가도 큐알코드로 전자명부를 기입해야하는 다소 불편한 방식으로 입장을 허용해요. 이 방식으로 이제는 관객이 걸러졌다는 생각을 해요. 코로나19 덕분에 사람들은 여러 전시장을 부유하기보다는 나름의 가치관을 장착하고 꼭 보고자 하는 전시만 보게 되었죠. 꼭 그 작품을 보고자 하는, 봐야 하는, 보고 싶어하는 관객이 본다는 것이죠. 작품 앞에서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이미지만 소비하고자 하는 가벼운 관람형태가 많이 걸러졌죠. 사람들이 어렵게 찾은 전시장에서 전에 비해 많은 시간을 갖고 작품 앞에서 사색하는 것도 좋은 현상이라고 보고 이런 흐름 덕분에 숨어있는 좋은 작가들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도 마련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대되요. 이 시기 덕분에 우리는 짧게나마 고독을 배워가고 있고 생각을 하고 진정한 가치를 고민하거나 구별하는 힘도 생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질문 4 >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는 예술 측면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답변 4>

크게 두 가지 정도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작품을 보는 힘’인데요. 많은 작가들이나 기획자들이 앞에 놓여진 작품을 “사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토로하죠. 작품은 “텍스트”로 대체 될 수 없어서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까닭에 같은 구도로 바라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색과 소리, 냄새, 움직임, 크기, 시간 등으로 표현되어 감각의 언어로 말을 해요. 충분히 작품과 대화를 해야 알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단 몇 초 만에 읽어서 작품을 ‘문서화’(=텍스트화) 시키려 했던 태도가 작품을 바로 보지 못하게 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포토존을 찾고 전시 관람 인증이 힙스터의 덕목으로 여겨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작품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접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시가 점점 다수 관객을 끌어모을 목적으로 자극적인 이미지 작품만을 노출시키게 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죠. SNS를 활용해서 ‘나’라는 사람을 포장하고 내 정신까지도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자기 이미지, 자기 정신, 자기 시간 등을 팔고 있죠. 자기 취향을 만들어 판다는 것이 유명한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어 자신 이미지를 포장해서 판다라는 것이 인플런서들로 인해 당연시되는 경우로 이어졌는데 어떻게 보면 미술 작품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못 본 사람들에게 널리 보여지면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좋은 것 같은데 표면적인 이미지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죠. 많은 이미지들이 마치 포르노그라피적으로 팔리는 현상, 예상하지 못한 천박한 형태가 나오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죠.


질문 5 >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답변 5 >

프랑스 파리에 유독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가 많아요. 10년간 파리에 살면서 길가에 그려져 있는 스트리트 아트를 많이 보며 지냈어요. 당시 굉장히 그런 작업 행위가 무척 인상적이어서 나중에 나도 서울에서 그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한국에서도 이태원에 작업실 있을 때 조금 시도해보긴 했는데 한국은 위생관리 차원에서 바로바로 지워져 버리더라고요.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아쉬움이 좀 남아있긴 해요.

이 이후 지금까지 해온 홍어와 만두가로 만든 발효 작업이 있는데, <13을 위한 은밀한 축제>라는 제목으로 캔버스에 파스텔로 그린 13개를 그리려고 했던 것을 아직 끝마치지 못해서 그 작업을 더 진행하려고 합니다. ‘13’은 제게 많은 영감을 주는 숫자에요. 시인 ‘이상’ 작품 중에 ‘13명의 아해들’이라는 시가 있는데 어렸을 때는 이해를 못했었어요. 근래 들어서 발효 작업을 하며 죽음과 삶 사이의 감정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13이라는 숫자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어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홍어 신화를 보면 홍어가 인간 세계에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와 장난을 치는 남풍을 막거나 통과시키는 문지기 역할을 해요. 제 몸을 펼쳐서 0을 만들거나 남풍을 통과시키는 1의 모양을 하는 것이죠. 홍어의 이 생김새는 곧 수의 기본이 되는 0과 1이 되는것 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시작으로 제가 죽음 삶 감정 등과 숫자의 관련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공포의 숫자 13에 다다르게 되었죠. 계속해서 나눠지지 않고 명확하지 않고 계속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공포를 주는 숫자가 13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작품을 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작가의 컴플렉스에 기인한다고 얘기해요. 모두 같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 부합되지 못하고 다른 언어를 쓰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태도가 컴플렉스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컴플렉스로 인해 사회에 떨어져 있는 그만큼의 거리가 공포로 채워지게 되죠.


사회와 일치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하는 공포, 그 모든 작품을 만들어내는 힘이 바로 이 공포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13이란 숫자는 예술을 만들어내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질문 6 >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 영향을 받은 예술가나 인물이 있나요?


답변 6>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내 삶에 충격을 준 사람들을 말해보고 싶어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이상, 안은미, 사마리아(별자리)가 있어요. 먼저 이상은 저에게 공포에 대한 것이 뭔지 그 힘이 무엇인지 그것을 일깨워 준 사람이죠. 이상의 시를 보면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상이 바라보는 공포로 인해서 계속해서 살게 되는 삶과 그 선상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이미지가 떠오르죠. 마리아 칼라스는 제 온몸을 치유하는 디톡스 같은 효과를 주는 예술가에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 온 몸이 탈탈 털려서 완벽히 그녀와 합체되는, 남과 동일시 되는, 동화되어버리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향기로운 여자에요.


안은미 선생님의 경우는 할머니들과 춤 추는 작업과 아저씨들과 춤 추는 작업 그 두 가지로 제 인생의 스승이에요. 그들을 무대에 세운 그 지점부터 벌써 선생님을 존경해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예술가에요. 제가 현대무용 보는 것을 좋아하는 데 무대에서 현대무용을 보는 것보다 무대 밖에서 현대무용수들이 장난을 치면서 말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장난치는 모습들 그러한 동작들, 몸짓을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무용수들이 흥이 나서 나오는 몸짓이나 뻐근해서 스트레칭 하는 몸짓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에 푹 빠졌죠. 늘 트레이닝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훈련된 사람들이긴 한데 자기 안에 에너지가 정교하게 몸을 통해서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것을 보는 게 참 아름답더라고요. 이러한 것을 좋아하는 저인데 현대무용을 전혀 모르는 할머니들이 추는 춤을 보게 된거죠. 자기가 자연스럽게 노동하는 팔이었다면 오른쪽이 더 올라갈 수도 있고 가볍게 목을 흔들 수도 있고요. 그동안 몸에 많은 7-80년의 히스토리를 쌓고 있었을텐데 그것을 내보내는 통로로서 춤을 추죠. 그건 아무도 못 따라해요.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가 다 다른 몸의 춤을 췄다는 것이죠. 그 몸짓 하나하나가 ‘완전했어요’.


사마리아는 별자리를 보는 신촌의 여자 점성술사에요. 신 없이 사주 풀이를 하는 지인도 있고 사주 보는 것에 대해 평소 와닿는 것은 없는 편인데 사마리아는 제가 태어난 1982년 10월 22일 몇 시에 별자리가 어떻게 형성이 되었다고 말을 해줬죠. 세상에 빛을 처음 보는 그 시기를 이미지들로 얘기해주는데 그 순간 이 세상에 비로소 ‘순응’이 되더라고요. 내 탄생 상황을 이미지로서 이해할 수 있도록 얘기를 해준 것이 굉장히 와닿아서 와락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이기도 해요.


질문 7 > 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7>

무의미한 것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라 불러줘서 내 삶이 의미를 갖었다고 할까요. 신내림 받는 그런 것 같아요. 다른 것을 하는 것은 삶의 의미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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