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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Mar 19. 2021

허미자 작가의 <오늘도 그린다는 건> 전시 서문

화가의 묵상

벌써 2019년 그러니까 서울에 다시 복귀한 그 해 

아름다운 사람을 소개 받았다. 


그리고 해가 두 번 바뀌었고 작년 리뷰는 즉흥적으로 당시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브런치에만 적어내렸고, 그 때의 인연으로 더 지속적인 교제가 이뤄졌고 전시 서문까지 작성하게 되었다. 


묵묵하게 하나의 주제로 12년째 그려나간다는 건 무엇일까. 십년동안 나는 무엇에 빠져봤는가.


'화가'가 귀한 세상이다. 상투적이거나 낙후된 표현으로 치부되어 화가라고 지칭하지도 않거니와 미디어아티스트, 설치미술가, 시각예술가 등등 화가를 제외하고 지칭하는 용어가 풍성하다. 


이번 글귀는 다음주 금요일 갤러리내일에서 허미자 작가의 초청전 전시 오픈을 알리는 홍보성을 가미한 전시 서문이다. 무료로 진행되오니 삼삼오오 아니 삼삼사사로만 방역에 주의하며 봄날 살랑거리며 찾아주시길 바란다. + Tip.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원형 작품을 선보이며, 적묵을 쓴 작품에 주목해보시길..


허미자 작가 홈페이지 : http://huhmija.com



화가의 묵상 

 

글. 홍희진(독립 큐레이터)


우연히 마주한 어느 고목은 십년이 넘어가도록 화가의 신체에 저장되어 있다. 이 고목의 생김이 화려하거나 괴상하여 인상적인 찰나를 포착하듯이 순간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닌 조용한 시간을 흘려 보내며 심상에 맺힌 사유의 이미지임을 밝힌다. 그 자리에 계속 위치하고 있는 오동나무를 한없이 바라보아도 계속 바라볼 수 밖에 없고 십년 넘게 그려와도 계속 그려낼 수 밖에 없는 영롱하지 않지만 단단한 인연이 형성되어 있음을 그림을 통해 증언한다. 화가는 특별한 사건 없이 그 자체를 몸으로 사모하고 있다.


빛을 그려내지 않고 빛을 증거하고 있는 잎사귀들로 빛을 자아낸다. 맑거나 흐린 하늘을 그려내지 않았지만 화폭을 가로지르는 몇몇의 가지들로 공간을 가르고 그려내지 않은 여백을 두는 방식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견자(見者)에게 화가의 눈을 갖게 한다. 동시대적 시간으로 한 화면에 묵(墨)으로 그려온 가지와 열매는 겹을 더하게 되면서 몇 장의 시간으로 여러 시간대를 획득하여 한 화폭 위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그것들을 표현하지만 우리의 눈은 더 아득한 곳으로 보내져 상념(想念)에 잠기도록 안내 받는다. 


화가가 눈과 머리 그리고 손으로 읽어 내리는 고목 ‘오동나무’의 부분 가지들은 각각 화폭에 등장하지만 전체를 드러낸 적은 없다. 프랑스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y)가 세잔의 붓질을 설명하면서 한번의 붓질이 무수한 조건(공기, 빛, 대상, 성격 등)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와 같이 화가는 재현과 그 밖에 놓여있는 조건들을 한번의 붓질로 책임지고 있다. 회귀하지 않는 붓질로 존재하기 위해 성립하는 그 무수한 조건들을 표현한다. 화폭 속에서 눈으로 매만져 손으로 실현하는 고목의 부분들은 각기 다 다른 자태 혹은 재현으로부터 일탈하여 때때로 추상적인 선으로 발견되어 화가로부터 이끌려 등장한다. 


화가는 그간 선보이지 않은 ‘원’ 형태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한결같은 화가의 고요한 응시 속 질문들로 그려낸 이 작품들은 어느 곳으로 도착할 지 예측할 수 없는 화가의 경로지 중 하나이다. ‘사각형’이라는 고전적인 화폭의 형태에서 무한을 상징하는 원형에 고목을 사유해 봄으로서 생명력과 영혼의 성스러움, 귀하게 여김, 귀하게 쓰임 등의 화가가 묵상하며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미국 시인이자 박물학자인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이 ‘원은 성스러운 것의 후광’, ‘눈은 특히 상징적, 경구적, 다면적 지각에 뛰어나다.’ 라고 말한 바와 같이 어떤 것을 강조하기 위해 원을 사용하기도 하고 찬양하는 마음가짐과 영원성을 나타내기 위해 이미 종교화 속 성자 뒤에 원은 후광을 임해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원형 작품들 앞에서 지각에 뛰어난 눈으로 현재의 아름다운 해를 보듯 즐겁고 아늑하게 머무는 시간을 기꺼이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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