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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Mar 23. 2021

제임스 H. 채 작가의 <Balance> 전시 서문

균형을 쫓는 궁극의 반복

2021년 2월 18일 목요일에서 28일 일요일까지 연남동 플레이스 막1에서 진행되었던 제임스 H.채의 세번째,  국내에선 두번째 개인전 <Balance>의 서문을 작성하여 소개한다.

 

개인전 1회를 하고 2 혹은 3회를 여는 예술가에게 글을 청탁받았을때 글의 방향을 잡기에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감이 뒤따른다. 사실 작품을 두고 글을  때마다 책임감은  다른 이유로 그림자같이 따라붙긴 하는데 지난 제임스 H. 채의 개인전 서문 같은 경우는 그의 초기 작품부터 전환기라고 하기에 아직 이른, 어떤 과정 중의 현재까지 관통해줘야하는 마치 작가에게 계기가 되어주는 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작업시리즈들을 부정해서도 안되고, 경유하되 현재 작업을 완전체의 숙성된 무엇인가로 형상화해서도 안되는 마치 유영하며 길목을 내어주는 나도 너도 모르는  '정도' 필요했다.


정확하게 글로서 할 일이 있다.


일반 관객에게도 읽혀야하지만 서문은 다짜고짜 청탁한 예술가에게 제일 먼저 읽힌다.


파랑 빨강이라는 색으로만 읽히는 그의 작업에서 이미 벗어난 이 작업 행위들에 작은 분량의 글로서 기반이 되어줘야할 일거리가 있었고 그 지점에 집중하여 나도 글로서 직조를 한 경우다. 그 직조는 브레인 사우나를 일으키며 저자인 내게도 인상을 남기고 또 떠난다. 전시가 만남임을 증명하듯. 서문도 그에 해당하듯.  


제임스 H. 채 작가 홈페이지 : jameschae.co




균형을 쫓는 궁극의 반복


-글 홍희진 / 독립큐레이터


균형감이 와해되어 작동하는 강박이 있다.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움직임을 자초한다. 삶의 배움 과정으로서 사유하는 것을 중단하고 인지할 수 없는 국면에 다다른다. 다른 측면의 응시로서 벌어지는 심리적 압박과 불안이 낳은 ‘피곤’이다. 수동적으로 이 피곤 상태라는 좌표에 위치한 예술가 제임스 H. 채는 불안과 강박에 집중하여 제작한 이번 개인전 <Balance> 작품 컬렉션을 선보인다.


실용성을 쫓아 온갖 매뉴얼로 조직화된 사회, 변화무쌍한 시스템 속 정착하지 못하는 상업 시설의 주기적 폐점, 순식간에 몰려들었다가 외면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한때 희망을 갖고 지지하던 어느 권력에 대한 익숙한 실망, 몇 달내 상황 종결을 비웃듯 지속되고 있는 역병의 현실. 구체적이고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이러한 상황들에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 우리이다.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는 이 순간에 위치해있고, 발생할 사건들로 걸어갈 것이다. 분명 어제와 다른 차이와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현재를 이행하며 우리와 수명을 함께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포토그래퍼, 교육자 제임스 H. 채의 이번 작품들을 들여다보자.


예술작품을 통한 그의 주관적인 형식은 직조 기계와 같은 반복 활동으로서 시간에 몸을 할애한다. 순환하는 기억과 공명 그리고 강박으로 강요된 궁극의 반복으로서 작품활동을 펼치는 예술가 바로 제임스 H. 채이다.


그가 만든 아날로그/디지털 직조로부터 생산되는 존재론은 무엇인가.   


상업제품 이미지 위로 관통하며 우연을 가장한 듯 관여하는 또다른 상업제품 이미지, 긍정의 결합 혹은 화합의 이미지가 아닌 협상되지 않은 이미지의 거친 개입. 그의 사진 작품들에 나타난 이미지의 됨됨이다. 대량으로 쏟아져 생산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급조차 되지않거나 사용되지않게 되어 잊혀질 상업제품의 운명과 대조적으로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하게 포장되는 이미지들은 제임스에 의해 화폭 안에서 수동적으로 조합되어 죽은 자연이자 정물화로서 등장해왔다. 예술가의 화폭 내 그리기 위해 예술가의 의도대로 놓인 상징적인 무생물의 물건을 ‘정물’이라고 부르고, 프랑스어로 정물화를 ‘죽은 자연(Nature Morte)’라고 일컫는데 제임스는 그 자신의 모습 조차 화폭에서 호출되어 색의 스펙트럼 속에서 무생물화 즉 정물화 과정을 겪었다. 그렇게 제임스로부터 연출된 정물화 속 이미지들은 시각적 노출 메커니즘으로서 전시의 회를 거듭할 수록 최종 빨강과 파란색으로 전면 위장하고 조형적 요소들은 점차 추상화 과정을 겪는다.


제임스의 작품을 국내에서 두번째로 보여준 개인전 <TRUE Colors>에서 재현 세계 속에서 등장한 사진 속 형상과 질료의 예술작품은 강도적 세계 문턱에서 ‘색상-모양-구성’을 중심으로 압축되고 생략되어 사유 운동으로서 반복의 근원적인 속성을 발견한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반복은 파토스(Pathos)이고, 반복의 철학은 병리학(Pathology)’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강박과 불안으로부터 균형을 쫓는 제임스는 상황으로부터 받은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변화상태로서 수동의 반복 행위이자 작품 활동을 통해 현재를 증거한다.    


이번 전시의 컬렉션에서도 연이어 극명하게 등장한 빨강과 파란색은 제임스의 카메라와 디지털 프로덕션의 조정에 의해 생성되는 가상의 조작체가 아닌 직조 재료이자 이념의 수동적 잠재 요소로서 현실 속에 실체를 지니고 출석한다. 이미 빨강과 파란색은 지난 작품들을 통하여 여러 강도들과 힘으로 해석되고 상징하여 정체성을 띄는 색의 진실로부터 자유를 선언했다. 다만 색의 진실은 오히려 청각적이거나 시각적이어서 물질의 형태만 유지할 뿐 실재를 배신하고 여러 문화들을 따라 이동하며 오히려 진실을 퇴색한다는 점을 밝혔다. 이미지로만 토로할 수 없는 진실은 색 안에서 웅변하지 않는다. 자유 선언과 동시에 색은 표류의 길로 나서고 이미지 밖에서 상징, 정체성, 진실을 결핍시킨다.  


재현의 세계로부터 더 멀리 여행을 나온 제임스의 이번 작품들은 추상화 과정을 겪으며 분열되어 공명하며 제임스를 직조기계라는 노동의 몸으로 변모시킨 주체이다. 제임스의 이념은 예술가 특권의 현실화 과정이자 존재론적 반복 운동으로서 추상 그 자체를 생산한다. 제임스는 지그재그로도 설명이 안되는 무방향성 직조기계로서 어느정도 일정한 간격과 애매한 거리들을 메우려고 씨름하며 직조틀에서 수직/수평/호환되는 시간을 종합한다. 제임스의 작품은 수동적인 자아를 극대화하여 표현하고 있고, 소멸하고 생성하기를 반복하는 운동으로서 강도적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판명한 것을 구분하기 어려운 가치 혼란의 시대, 생명체로서 숨쉬기부터 제한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균형감을 쫒는 사유 운동을 펼쳐나가는 제임스의 응시에 질문을 던지고 그의 신호에 눈을 열고 색상의 진실을 넘어 이미지 밖 증언하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보자.   


오프닝에서 핸드폰에 남긴 현장 한 컷. 직조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니 볼 기회에 면대면으로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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