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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Mar 25. 2021

<REanalogue : Unique> 전시 서문 대신

코로나 중에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오늘 낮, 기획했던 전시를 철수하는 일이 있었다. 설치로 심사숙고 작품 한 각 고민 많던 참여작가들이 가차없이 속도를 내어 짐을 쌌다. 나사로 흉진 나무 벽, 테잎 붙은 바닥과 곰팡이 진 벽들 안녕.


작품 설치하러 들어올 때의 모습인데 희한하게 철수하고 나갈 때는 다른 모양새로 공간과의 애정어린 작별 인사를 나눈다. 른 전시 보러 올께.  그런.

철수 끝에 마지막 포스터 떼는 장면

작년에 이어 독립큐레이터로서 일을 하면서 어떠한 이유라도 계속 연명하는 예술에 감탄한다. 공무원일때와는 분명 다른 질문들과 다른 관점들로 풍요로와진 건 사실이다. 그리고 새삼,


“전시는 끝이 있어 매력 있다.”


다시 그 상황은 돌아올 수 없다. 시간의 매력이기도 하다. 참여했던, 그것을 보았던 사람들의 머릿 속에만 저장되어있다. 평면 사진은 이를 결코 담아내지 못한다.


전시를 철수해두고 다시 가본지 몇년만인지도 기억조차 안나는 문래예술공장 사무실 미팅에 갔다. 뫼비우스 시간이 작동하여 출근하던 길을 건너는데 기시감 같은 기운마저 들었다. 2009년 예술공장 공사장 도면을 말아서 뛰는 내 모습이 불현듯 생각났다.


익숙함을 넘어서 오싹함.


사무실 옆 탕비실 연두색 타일을 발견하는 순간 소름마저 돋았다. 장소의 영혼성인지 공간과의 인사성인지 십년 넘게 안바뀐 사무실 탕비실 사물들이 발견될때면 사람을 만난 양 내 몸은 깜짝 거렸다. 전 직장에 너무 오랜만에 가서 그런가. 사라진 공간들은 가상현실처럼 소환됐다. 여전히 그 곳은 감각을 깨워준다. 어느 책 어느 전시 어느 공연을 본 것과 같은, 하나의 작품과 상대한 느낌이랄까.


철수한 날은 뭔가 허하다. 그러고보니 다른 감각이 들어오기 적합한 타이밍이었다.


아래 글은 코로나 중에 전시장을 찾아오는 관객들에게 쓴 <REanalogue : Unique> 전시 서문 기능의 편지이다.



ARTXSTAY Mullae Gallery

아츠스테이 문래갤러리

2021.3.10.(수) ~ 23.(화) 11:00 ~ 19:00


<REanalogue : Unique> 전시서문 대신 편지를 띄우며


포근한 햇살이 대기를 녹이는 봄 입니다. 문래동 철공소 골목을 지나 지하 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예술 작품 전시를 보러 와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안개가 걷힐 기약없이 시경이 밝지않은 예술가의 여정에서 고군분투 중인 5인의 작가를 진심으로 응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작품 간 시선의 이동을 위해 바닥에 놓아둔 작가의 말들이 담긴 프린트물을 발견하여 주시고 바닥으로부터 집어들어 읽어주시는 수고를 더해주시기 바랍니다.


해가 바뀌어도 코로나와 일상을 함께 하고 있는 우리가 받은 선물이 있다면 ‘시간’입니다. 보다 빠르게 진보하는 세상에 맞서 응고된 시간 속에서 우리가 잃었거나 잊어온 것들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순간입니다. 예술 작품을 통하여 우리에게 유일한 것은 무엇인지 아날로그를 다시 소환해온다는 것은 어떤 방식인지 살펴보는 전시입니다.


작년 늦가을 서울시 우리가게 전담 예술가 사업에서 첫 만남을 갖은 5인 작가 강다솜, 김나경, 서예원, 양세진, 오희수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만나는 작품 먼저 말씀드리자면, 분명 존재하는 장소로서 한때 거주 했었으나 주소를 갖지 못하여 지도상 부재하는 풍경을 떠오르는 향과 그 곳의 이미지를 소환하여 그려내는 강다솜 작가의 모노그래프 판화 드로잉 작품을 보실 수 있고,


상업적으로 유통 판매가 용이한 규모의 유토 덩어리를 잘게 분쇄하여 물감과 같은 미술재료 단위로 작업의 시작점을 설정한 후 파레뜨에서 색을 섞듯 손을 붓삼아 유희하며 조소하는 김나경 작가의 작품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분쇄된 작은 단위의 유토들로 덧붙여지며 과정을 갖는 미완성의 조형 일부를 다시 겹겹이 잘라내는 행위를 더하여 작가 스스로 조형 해하기를 긍정하는 모습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완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지속감을 형성하면서 재질 특유의 잘리는 단면에서 자아내는 조형 내부의 색 조합들은 이글어지며 우연한 회화성을 내비칩니다. 조각가로서 회화적으로 물질의 내외면을 탐구합니다.


영상 교차편집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고 불러일으켜 온 서예원 작가의 작품은 이번 전시 속에서는 평소 작업의 기반이 되어온 좀 더 내밀한 근거들, 가령 카메라 필름들과 거주했던 장소를 드로잉한 작업이나 사진이미지 꼴라쥬 시리즈들로 소개를 합니다. 장소적인 것이 무엇인지 작가적 관점에서 집에 대한 정의들로 각자의 유일함과 아날로그에 대해 상기해보는 시간을 제안합니다.  


꼬마시절 부모님 손 잡고 조부모님댁을 방문하던 이태원 동네가 우사단길 중심으로 도시재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살아온 지역에서 더이상 거주할 수 없다는 현실과 부서지는 콘크리트 시멘트 재질에 영감을 받은 디자이너 양세진 작가는 수십년간 걸어온 골목길들을 사진 찍고, 그래피티하고, 곱씹으며 철사를 구부려 시멘트 화폭 위에서 유희하며 그려냅니다.


기다림의 연속 속에 살고 있습니다. 늘 관객에 갈증을 느끼는 제 심정도 그렇습니다. 기다림의 순간에 셔터를 눌러 저장한 오희수 작가의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화려한 꽃을 받혀주며 가려져야하는 오아시스를 주인공으로 삼고, 더이상 백지로 환원되지 못할 이면지들을 오색찬란한 색상들로 화려하게 등장시켜주는 작품들도 함께 전시 중입니다.  


작업장으로부터 이사를 하는 심정으로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이 작가들이 만난 본 전시장이자 무대로 분신과 같은 작업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개념과 작업을 선별하면서 정리를 하며 가다듬고 쓰다듬고 제자리를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들의 예술가로서 행보에 많은 관심을 갖어주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노트와 개별 명함을 비치하여 연락처를 남겨두었습니다.  


다시 한번 귀한 발걸음에 감사의 인사와 건강의 안부를 여쭙니다. 감사드립니다.


- 2021년 3월 10일 아츠스테이 문래에서

사회적기업(주)안테나 아트디렉터 홍희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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