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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Jun 15. 2021

<Prairie Land 초원산방> 전시 서문

예술가의 노고와 관심사 : 시선, 생명, 조형

김포아트빌리지 아트센터에서 오는 6 17일부터 8 15일까지 시각예술분야 창작전시지원사업 선정작가 그룹전 <Prairie Land 초원산방> 개최합니다. 전시 서문을 발행합니다.


꾸덕한 여름 김포로 드라이브 오셔서 무료 전시를 보시는 것을 강추하며 뚜벅이님들은 지하철 이호선 당산역 이번 출구에서 7100번 버스를 이십분간 타고 한강 풍경 구경하며 슝슝 놀러 가자고요~



<Prairie Land 초원산방> 전시서문

- 아트디렉터 홍희진


습득하기 위한 사유 운동은 시간을 동반합니다. 창조를 하기 위한 사유는 예술 작품을 잉태합니다. 얽혀있는 마음속에 미비한 씨앗이 감당도 못할 태풍을 직면하고 살아남아 자라나는 것이 예술 작품이라면 우리는 이를 통해 무엇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또한 예술가들은 예술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고민 속에서 유영하고 있을까요.     


바람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푸르른 먹거리, 기다림의 미학, 밤 하늘을 읽는 지혜, 햇살로 움직이는 시간 그리고 성실과 삶에 대한 애정.


초원의 생리를 예술생태계에 빗대어 만든 본 전시 <Prairie Land 초원산방>은 예술을 시작했던 초심과 이를 향한 진심, 예술가들의 열의와 고뇌를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작품들로 펼쳐집니다.      


‘야생 규칙’ 아래 혹은 ‘비자발적 모험’ 한가운데 길을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이 길에 들어섰을 때가 아득한 사람도 있고, 길을 찾은 냥 한숨 돌리고 더 나은 길을 찾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어디론가부터 출발했지만 제자리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초원에서 정착하기를 바라지만 자연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이동시키며 이 여정 속에서 고민하게 합니다. 마치 빛과 색을 쫓아 사유하려 하는 예술가들과 같이, 그 공간에 놓여진 선으로부터 온갖 감성을 집합시켜 감각하도록 요구하는 어느 고대 철학자와 같이 사물들의 배열만으로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본 전시는 ‘시선’에 관해 시작합니다. 동일한 것을 함께 보아도 각자의 인식 기제에 따라 인간은 다른 의미 체계를 만들어 기호를 해석합니다. 설치와 도자 공예라는 장르적 구분에 대한 고민 아래 이러한 인간의 양가적 인식체계를 압축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주세균 작가의 신작들을 먼저 만납니다. 작품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으로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대화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속성입니다. 음성을 통한 소통방식 외에 낌새, 눈짓 등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mind to mind)의 비물질적 대화를 통해 타인과 나누는 ‘짐작의 소통’ 방식은 분명 존재합니다. 허혜욱 작가는 유리 속성을 통해 표현된 인간의 눈을 통해 이 지점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객관적 인지는 주관성의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정성진 작가는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 기제를 가상공간에 펼쳐놓은 신작으로서 주관적으로 인식된 풍경을 재현합니다. 얼핏 보면 사진과 같은 찰나의 멈춘 기록과 같지만 미세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영상작품을 통하여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지점의 한계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 신작도 함께 보여줍니다.       

 

두 번째 주제는 ‘생명’입니다. 3m 이상 자라는 강아지 풀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벼과인 강아지 풀은 벼가 되지 못해 잡초로 분류되어 재배 대상이 아닌 이유로 생명과 무관하게 제초됩니다. 장용선 작가는 생명에 대한 기념비적 태도로서 외면 당하고 있는 잡초의 씨앗을 모아 전시장 곳곳에 풍선을 통해 발아되지 못할 그 씨앗들을 공중에 띄워주는 신작을 선보입니다. 인간의 자연파괴로부터 기인하여 죽음 앞에 놓인 생명체를 한국 전통 기법인 진채화로서 담아내어 보여주고 있는 연미 작가의 신작들을 소개하며, 인간의 인지 속도와는 다른 시간계에서 느리게 움트며 완전체가 되는 생명의 중간과정을 최소한의 물성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내는 박현철 작가의 신작들을 소개합니다.


사회의 오류와 불명확한 사건들 앞에서 판단해야 하는 순간 다음의 행보를 정하기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그 모호함에 직면하여 사회적 합리로부터 요구받는 개인의 삶이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철학자 칸트가 오류의 개념 대신 착각이나 가상의 개념을 끌어들여  ‘공통감’이라는 개념을 도출해낸 것이 아닐까요. 예술 작품 앞에서 작동하는 상상력, 이성, 지성을 통한 우리의 질문은 오히려 이러한 보편타당한 감정으로부터 먼저 발생합니다. 이 지점을 다루는 오세경 작가의 신작을 살펴보고 세 번째 주제인 ‘조형’으로 이어집니다.


전통적으로 ‘꽃’을 소재 삼아 예술을 사유한 방법은 여전히 미(美)에 대한 기본적인 탐구이며,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있어 이성적인 판단이나 정보를 동반하지 않습니다. 한없이 그려도 넘침이 없는 꽃으로 가득 찬 화폭을 선보이는 정선이 작가의 신작을 소개합니다.  상단의 추상적 이미지와 하단의 재현적 묘사력을 대비시켜 순수 조형력을 펼치면서 투명한 화분 속에서 피어오른 꽃을 압화하여 작가의 생각에 상징성을 더합니다. 먹이 아닌 아크릴 물감으로 서예적 기법을 발현하고 칼날로 형상을 만들어내는 춘봉박 작가의 이번 신작은 희노애락을 산수로 표현해 온 지난 작업이 아닌 가변적인 파도 형상에 집중되어있습니다. 심연의 바다로부터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파도의 움직임과 색상 그 자체에 감각을 집중시켜 감상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본 전시의 참여 작가로서 김재각 작가는 조형 발견자로서 조각을 다룹니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으며 금속 물성을 다루는 그의 수집품, 초창기 실험작들과 더불어 비물질적 조각으로서 회화성에 대한 고민을 더하여 신작을 선보입니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가운데 전시장을 찾아주시는 관객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예술을 삶으로부터 멀고 낯설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 눈 안으로 함축되는 빛 또한 예술의 근원지 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신작들을 감상하시면서, 혹은 벽에 부착된 예술가들의 작은 문구들로 영감을 얻는다면 나의 취향을 발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내 안의 수많은 타인을 발견해내어 나를 좀 더 알아가게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예술이 선사하는 영향입니다.


‘타인은 어떤 가능한 세계의 표현에 해당한다.’ 철학자 질 들뢰즈의 표현입니다. 본 전시로서 펼쳐놓은 세계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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