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라도 여행을-아기와 크로아티아 여행> 그 첫 번째 이야기
발칸반도 아드리아해의 꽃은 어디인가. 크로아티아의 바다.
아드리아해 동쪽 해안에서 바라본다. 저 너머의 끝에 이탈리아가 있다.
처음 본 아드리아해는 지중해에서 느꼈던 바다보다 더욱 진한 파랑 그 자체이다. 지중해의 명랑함과 달리 성숙한 느낌이다. 하늘과 가위질당한 듯 갈라진 바다는 파랗고도 선명하게 파랗다.
본토와 끊겨있는 '월경지'인 두브로브니크의 지리적 여건 때문인가. 국내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나온 유명한 관광지여서 그런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두브로브니크는 설렘이 크긴 했지만 생각보다 편안하지 않았다. 내전을 겪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그 공간장-에너지, 기운-이 남아있는 것일까. 바다를 품은 도시지만 변화무쌍하고 어딘지 모르게 까칠한 분위기가 첫인상이다.
내 탓이 아닌 연착! 하지만 개인이 상황을 돌려놔야 하는. 어찌보면 크로아티아 여행의 시작은 독일부터 시작된 것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크로아티아로 입국하느라 독일 뮌헨으로 날아갔다가 루프트 한자 항공 비행이 연착되는 바람에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눈앞에서 놓쳤다. 딜레이는 십분 남짓이고, 웨이팅은 삼십 분 정도라서 바로 탑승 가능한 시간량이라고 판단했다. 비행기에 내리기 전까지 말이다. 갈아타기는 결코 삼십 분 내 이루어질 수 없는 엄청난 장거리 뛰기였다. 바닥에 롤링 이동 장치가 있은 들 이 물리적인 거리가 체감 인천공항 두 바퀴 도는 느낌이라고 결코 가늠하지 못했다. 아기띠 없이 아기를 들치고 빠져나오고 들어가고의 두 차례 검색대를 지났다. 팔은 너덜너덜해지고 지금까지 그때만큼 괴롭고 힘든 갈아타기는 없었다.
아기가 그때로 돌아가지도 않겠거니와 다시는 복잡한 갈아타기 동선의 뮌헨에서 경유하지 않을 생각이다.
영국 영어를 하는 신랑은 고객센터로 가서 신사적으로 "Would you mind~"로 차분히 상황을 호소한다.
세상에 그렇게 숨 막히는 영어가 있으랴.
인천공항에서 체코로 갈 때 크로아티아는 여행자보험이 필수라는 소식을 갑자기 접하고 증빙서류까지 준비하고 우리는 여행을 잘 준비했다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뮌헨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독일 땅에서 준비한 짐 하나 없이 헤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이었다. 우리의 짐은 벌써 크로아티아에 도착해있고 사람은 따라가지 못했다. 신랑의 호소력으로 루프트 한자 고객센터에 불만을 조곤조곤 강하게 표출했으나 다섯 시인 현지 시간에서 자그레브행으로서는 자정이 가장 빠른 출발이라며 타자 몇 번을 치면서 원활한 진행인 듯 자리 배치를 친절하게 해 주었다.
난 불화산이었다. 눈이 뒤집힌다는 것을 내 여행 계획에 없는 독일에서 경험하다니. 유로는 쓸 예상을 못해서 환전해 둔 돈도 없고, 늦가을 아기를 덮어줄 작은 천도 없고, 뮌헨에서 단지 삼십 분 대기하고 바로 자그레브행 타고 또 갈아타서 두브로브니크로 오늘 저녁에는 도착할 생각에 크로아티아 화폐 쿠나로 넉넉한 택시비 정도만 교환해둔 상태였다. 당시 상태를 표현하기에 너무나 많은 용어들이 떠오른다. 메슥거림, 급체, 싸늘한 식은땀, 근육통, 사이니지 식별이 불가능한 눈, 너덜너덜 늘어난 듯한 팔, 극도로 피곤하여 괴이한 몸 상태였다.
일곱 시간 동안 뮌헨 공항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절대로.
자정에 탑승하여 자그레브에 도착한 그 새벽에 두브로브니크행 비행기로 다시 갈아타야 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아기'라는 위급 조건이 있었다. 자정까지 먹일 이유식이 당장 없었고 체력은 바닥 그 아래까지 내려갔고 당초 계획은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를 거쳐 남쪽 끝 두브로브니크까지 저녁 여덟 시 안까지 들어가는 것이 계획이었다. 여덟 시에 에어비앤비와의 약속이 있었다. 그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하랴. 와이파이를 찾고 일단 연착 소식을 에어비앤비 메시지로 남겨놨다. 어떻게든 두브로브니크까지 오늘 안에 가야 한다는 집념으로 머리 한가득 차올라있었다. 뮌헨다운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뮌헨은 여전히,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다. 안 좋은 인상은 이렇듯 쉽게 쌓인다.
아이를 신랑에게 맡기고 고객센터로 간다. 너무나 울분에 차있고 정신은 제자리에 있을 수 없는 상태였다. 차마 당시 내 입 밖으로 나갔던 영문으로 옮길 수 없는 말들을 강하게 건넸다.
'독일의 휴머니즘이 이것인가. 아기의 먹거리는 제로상태이고 아기는 결코 자정 비행기를 탈 수 없다. 우리는 자그레브가 목적지가 아니라 두브로브니크까지 오늘 저녁내로 이동해야 한다. 어떻게든 우리를 크로아티아 땅에 넣어달라. 여섯 시 비행이 곧 출발한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그 비행기 어느 좌석이든 타야 한다.'
마치 시위를 하듯. 짧고 강렬하게. 어떤 선언문을 주장하듯. 그렇게 주어 동사로만 말을 했다.
떠올려보니 영어도 독어도 아닌 엄마의 언어였다.
통하였고 뭔가 달라진 태도이다. 톡톡 타자를 치는 게 아닌 전화를 하며 긴박하게 움직였고 모르는 안내자가 어디선가 나와서 우리를 다시 뛰게 만들었고 여섯 시 비행기에 올랐고 자그레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자그레브 공항 데스크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기 위한 투쟁을 했다.
뮌헨 공항 안내자의 메시지가 기억난다. '자그레브에서 행운이 있길'
자그레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읍소는 바로 통했다. 안내자가 우리를 세큐리티 선을 넘어가며 인도해줬고 바로 두브로브니크행 비행기에 또 올라탔다. 나는 안전벨트를 먼저 메고 내 것과 연결되어있는 아기 허리를 묶는 붉은색 안전벨트로 아기와 엮었다. 아기와 나는 꽤나 앞에 탔고 신랑은 보이지 않는 비행기 끄트머리 승객 자리가 아닌 승무원 자리에 앉아있다. 신랑으로부터 안정을 얻고 싶은데 너무나 멀리 있어서 무서웠다. 신랑도 나중에 말하길 다른 이유로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경비행기라 굉장히 흔들렸고 아기가 계속 울어서 신랑도 그 울음소리에 정신이 분산되어있었다고. 그때 인지는 못했지만 들이닥친 스페이스 포비아 때문에 나도 울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유로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극복은 못했지만 일초 단위로 차오르는 나를 짓눌렀던 기억이 있다.
두브로브니크까지 어떤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내 옆에 앉은 각각 두 명의 크로아티아인은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자그레브행 비행기에서의 까만 곱슬머리 할머니이다. 아기가 많이 울어서 할머니가 색연필이랑 종이를 꺼내서 아기를 달래주었고, 두브로브니크행 비행기에서는 과호흡 증상이 와서 패닉 상태였는데 옆에 앉은 건장한 남자가 자기가 비행기 설계자라면서 핸드폰으로 이미지를 띄우며 비행기를 설명해주었고 한 시간 좀 넘게 비행이 지속되니 상황을 설명해줬다. 숨을 잘 못 쉬는 내게 어디선가 구멍을 열어 바람을 코로 들어올 수 있도록 조준해주었고 자기 친구 아기 사진도 보여주고 비행기 구조 설명과 함께 구글 지도를 열어 우리가 어디에 있고 앞으로 몇 분 걸릴지 내릴 때까지 상세하게 끝없이 설명해주었다.
천사를 만났다.
까만 곱슬머리 할머니와 건장한 남자. 지금 생각해보면 두 명이 같은 사람인 것처럼 나를 줄곳 수호해줬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늦은 밤까지 기다린 집주인은 친절하게 환영해주었고, 택시를 타고 들어간 두브로브니크의 밤은 상당히 아름다웠으리라 내 눈에 기억은 붉은 조명들로 구시가지가 보인 한 컷이다. 드디어 땅에 내렸고 우리는 무사하구나를 느낀 순간이었다.
늦은 밤에 우리는 먹거리를 찾아 구시가지로 내려갔고, 맞닥뜨린 간결하고 깨끗한 벽 앞에서 긴장감이 맴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회벽의 인상이다.
벽 한가득 화려하고 빼곡하게 그림을 그려 넣은 벽화를 바라보고 서있자면 감탄과 함께 눈이 숨 가쁘고 결국 짧은 시간 내 수많은 시각 이미지를 사유하려는 욕망에 어지러움증을 동반한다. 흙은 붉다 아니 하얗다. 우리나라 남쪽 고창, 신안에 가면 황토를 만나기 쉽다. 누런 흙이 대개 흔하고 붉은 흙은 영양분이 많고 귀한 흙으로 느껴진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흙은 허옇게 저장되어있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를 하며 주변을 돌아보면 절벽과 함께 돌산이 종종 하늘에 걸쳐 눈에 띄고 그 산들은 울창한 푸르름에 인색하다. 이곳인가 이것을 보러 내가 그 수난들을 겪은 것일까. 크로아티아 여행 이제 시작이다.
성벽 투어 입장료는 5세 이하만 무료이고 150쿠나로 유료다. 6세에서 18세 미만까지 청소년은 50쿠나다. 중간에 카페가 유일하게 하나 있고 그곳에만 화장실이 있다. 뷰 좋은 곳에 테이블을 둔 카페가 있어 가볍게 맥주 한잔 마시며 안 앉아볼 수 없지만 모든 곳에서 걷다 멈출 수 있다. 중간에 내려가는 반가운 계단도 만나지만 한번 계단으로 내려가면 재입장은 안된다. 구시가지 쪽 붉은 지붕 풍경을 바라보든지 아드리아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가족사진을 찍던지 눈으로 바라보느라 소개할 사진용으로는 많이 찍지 못하긴 했다.-
성곽 투어를 하며 가보고 싶은 사잇길을 찾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동선을 다 탐닉할 수는 없기에 선택적으로 한 두 골목만 가보기로 하고 찍어뒀다. 내려가서는 그 골목을 맞게 찾아내진 못하고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게 헤맸지만 말이다.
골목의 묘미는 헤매기이다. 갔던 곳 다시 오게 하며 머리를 엉키게 하는 묘한 공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