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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Mar 19. 2022

전시 <중간계 : 생-산> 나가며(2)

기획자의 참여예술가 작품 곱씹기 "요한한 작가"

답십리 이랜드(구)패션사옥 공간에서 지난 2022년 2월 3일에서 3월 2일까지 진행되었던 <중간계:생-산> 전시에 출품했던 요한한 작가의 작품들과 두 차례 진행되었던 퍼포먼스 중심으로 써내려간 글입니다. 




소통의 길항*


무위한 단어들의 과잉, 감각을 전시한 문구들, 모바일을 한 손에 쥔 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몸, 수신자 없는 명령어, 한정된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자들과의 SNS 채팅, 소통을 목적에 두지 않은 문구, 전달력 잃은 단어들의 부유, 복제되는 동작들의 안무, 감각을 깨우는 향과 북 소리, 이유없는 얽힘과 단절감

실재적인 세계는 무엇을 담보하는가? 오늘 당신의 말은 누군가에게 당신의 뜻대로 전달이 되었는가? 요한한 작가는 외피라고 하는 생명체를 여러 막들로 싸서 돌봐주는 가죽 피부 표면에서부터 근원적으로 몸의 등장 이래 열려 있던 감각체가 가진 소통 상황에 집중하여 작업을 펼친다. 더 잘 통하기 위한 자기 기술력으로서 소통술을 탐색하기 위함도, 피부로 만든 북을 거세게 울려 무뎌진 몸의 감각을 깨우고자 북을 제작하는 이유도 충분하지 않다. 일상 가정의 도구들 후라이팬, 주전자, 대야, 냄비 등을 가져와 외피를 씌워 북을 조형할 때면 일상 속 몸을 작가적 창작행위로서 탄생시키고 있는 모체적 입장을 보이기도 하고, 이미 죽어있는 외피로 만든 연주용 북 외피를 불과 물로 달래서 최적의 울림 조건을 맞춰줄 때는 살아있는 몸을 세심하게 대하는 보호자적 태도마저 느껴진다. 몸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 각종 소리, 얼굴의 표정부터 몸의 자태와 움직임까지 다양한 동작 그리고 타인의 몸으로 도착하기.  작가의 북들은 전시장 상황에 따라 다른 조립과 설치를 통해 다른 자세를 취한다. 어쩌면 소리를 낼 줄 아는 언어 능력을 갖춘 북은 이러한 신체적 동작까지 취할 수 있도록 ‘세이프트 캔버스 Shaped Canvas’로서 북의 언어를 드러내어 작가는 몸 그 자체의 발산작용에 대한 연구를 하는 중일 수 있다.   


동작을 통한 퍼포머들의 움직임들과 세워져있는 모니터들, 매개체로서 북 조형물들은 전시장에서 즉흥 연주되는 북 소리와 오픈 채팅방 속으로 연결지어 들어온 관객들과 어우러져 온오프라인 연결세계에서 실재 그대로를 드러낸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몸의 동작이 고조될 때는 마치 고대 샤먼 의식의 트랜스 상태에 빠진 춤추는 몸을 비추는 불로서 동시대적으로 환원되어 블루스크린 불빛이 몸에 잔존하기도 한다. 모바일 폰은 한 손에 달라붙어(docking) 손의 잠재적 기능을 잃고 기계만 쥐는 한 가지 기능으로 고착되었고, 표정을 가진 언어의 빛을 지닌 눈은 타인의 눈이 아닌 모바일 폰 안으로 묶여버린다. 어쩌면 지금의 나와 당신처럼. 이는 소통의 물리적 측면에서 ‘잡기’ 기능인 한 손의 상실, ‘보기’ 기능인 눈과 기계의 연결은 노골적으로 몸에서 언어작용을 펼칠 수 있는 일부 부위(손과 눈)에  ‘일상적 기계-네트워크 세계’를 위치시켜 다른 몸으로 연결을 못하게 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조형적 몸으로서 나타낸 시각적 장치가 아닐까. 북을 일상생활에서 발견된 도구들로 조형하거나 자연의 동작- 그의 작품에는 달의 변화로 만들어진 ‘지부스’, 빛의 파동으로 만들어진 ‘에돌이’ 북들이 있다.-으로서 몸 자세를 취하게 한다면 작가가 퍼포먼스 작품에 자주 등장시키는 조형적 몸 또한 흔한 일상생활 풍경 속 몸으로부터 호환하여 자연 그 자체인 몸의 동작들로 출현시킨다.


오픈 채팅창 속 수많은 단어로 인한 정보들은 있는데 대화가 일어나지 못하거나, 다른 세계에서 주고 받는 문장들이 속출되거나, 접속을 못하여 양쪽 세계를 동시에 감각하지 못하기도 하고, 한 쪽 세계인 물질적인 세계에서 자신만의 고유 세계와 일방 접속하기도 하고, 이 와중에 단절감을 통한 거리 확보에서 주는 안정감을 느끼는 몸 등 각자 다른 소통 상황 속에서 관객들은 소통 혹은 작품 감상이라는 일정한 수위를 고수한다. 소통이 다 함께 일어나는 초연결이란 사실상 비현실적이다. 초연결이란 시공간이 무색한 가운데 네트워크를 통해 사물과 몸 구분없는 구체적인 연결이다. 연결은 소통의 공명과는 좀 다른 이야기이다. 모순적일 수 밖에 없고 개별적인 몸은 이러하고 저러한 상황들에 처해있다. 요한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어떠한 좌표에서 어떤 수위로 몸의 소통 상황을 드러낼 지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지점이다.    

   

*‘길항’ 이라는 용어는 요한한 작가의 2019년 갤러리조선에서의 개인전 <공명동작> 소책자 속  김남수 안무비평가의 평문에서 발췌한 단어이다. 글 맥락 속 단어 의미와는 다르게,  소통에 있어 서로 버티며 대결하여 공명 작용을 감소시키는 상황적 용어로서 위 글의 제목에 사용한다.


답십리 전시장 요한한 작가의 작품 설치 현장 이미지, 사진 강민정

이미지 내 작품 캡션 

(왼쪽 모니터)요한한 Yohan HÀN/<공명동작 – 대화편/영상 9분/퍼포먼스 후 기록 영상 반복재생/2022

(양 옆 북)요한한 Yohan HÀN/<매개체들>/외피(소,양), 장석, 복숭아씨, 원석구슬, 인조모, 냄비, 주전자, 요강, 양동이, 대야,  삼각대/각 크기 230x50x50 cm 가변설치/ 2021

(가운데 북)요한한 Yohan HÀN/<포보스>/소외피, 천연안료/150x150cm/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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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한 작가가 설명해주는 <중간계:생-산> 작품

https://youtu.be/G1OdKT6zA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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