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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May 16. 2023

<<수면의 이접술>> 전시서문

정성진 개인전@서대문구청 청년베프

  잠 속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발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정성진은 수면 중에 마주한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는 공간들을 디지털 이미지 제작기술로 쫓아 물성의 세계에 등장시킨다. 무의식세계에서 시간의 층위들은 좌표계를 잃고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파편적 꿈들은 현실 속에서 컴퓨터 알고리즘과 3D 프린팅 등의 제작 방식을 거쳐 출입구 없이 내부에서 무한히 회전하는 공간들로 시각화된다. 꿈의 세계를 물성의 세계로 옮겨올 때 작가는 디지털 세계를 필히 통과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단선적이고 선형적인 시간의 세계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디지털 세계에서만큼은 원하는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매력적인 세계의 법칙을 통해 작업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미로, 굴, 건축적 통로 이미지를 통해 끝없이 등장하는 공간을 구현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들은 현실 세계의 시공간을 거부하고 있다. ‘몇 날 몇 시 몇 분 몇 초’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양자적 세계를 못 보게 하는 장치일 수 있다. 눈을 뜬 상태의 세계만으로 객체로서 인간은 해명되지 않는다. 하루 삼 분의 일을 수면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수면 중에 일어나는 시지각의 감각들을 외면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삼 분의 일의 세계를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맞닿아있다. 수면 중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이 수면 중 사유이미지로서 등장하고 있는지 신체 감각을 동원하여 지각할 수 있다.

  작가가 잠들어있거나 깨어있는 세계를 탐색하는 것에 어떻게 천착해있는지 보기 위해서 작품 <Voxel space>을 대표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세 가지 현상을 각각 연출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한 화면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로서 ‘화소(Pixel)’가 ‘복셀(Voxel, 3D 공간에서 격자상 분해한 그래픽 단위) 단위에서 해체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객체들의 같은 배치 상태인 화면 속 한 객체로서 ‘신체(Body)’ 단위에서 엮이고 쏟아부어지는 현상을 보여주고, 같은 공간에서 객체들의 총체 상태에서는 ‘흐름(Wave)’의 현상 그 자체를 보여주며 액상적인 이미지를 펼친다. 작가는 가시적으로 견고하며 분자적이고 동시에 양자적인 세계의 활동들을 '화소-신체-흐름'이라는 방법론으로 종합하여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작품들을 통해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정성진 작가의 작품<Voxel space> @엘로디 옹그 촬영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자아가 충동이나 소망을 의식세계로부터 무의식세계로 옮겨놓고 자기 방어기제로써 ‘억압’의 방식을 쓴다고 볼 때 무의식세계인 수면 중에 저장해 둔 기억의 이미지들을 파편적으로 볼 수 있다는 예술적 가정이 가능해진다. 작가는 잠을 자고 시간들은 종합을 펼쳐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가 잡아채 물성의 세계로 옮겨내는 파편적 이미지들은 종합의 방식 중 ‘이접’에 따라 각기 다른 현상들과 상이한 의미가 위상을 달리하면서 존재한다. 작가의 개별적이고 미시적인 세계에서 온 시간의 종합으로서 사유이미지들은 이러한 ‘수면의 이접술’이라는 작가 특유의 창작시스템을 통해 분출한다.

  이번 전시는 세계의 확장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다양한 층위의 알 수 없는 것들로 현현하고 있고 우리는 꿈의 세계와 디지털 세계, 그리고 물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풍성한 세계와의 만남을 주선하여 관객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감각할 수 있도록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청년베프 스토리지 BeF Storage는 서울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7-10 지하에 위치해 있으며 서대문구청에서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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