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욕먹고 내가 한 말

자존감을 지킨 한마디

by 사리엘

화창한 코펜하겐의 오후,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분명 러시아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날따라 차도 많고 자전거도 많았다.


자전거 신호등이 빨강에서 파랑으로 바뀌는 순간, 자전거 전용 도로 위로 두 줄로 늘어선 자전거들이 촘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내 오른쪽에서 지나가던 자전거가 내 자전거를 툭 치고 갔다.


젊은 청년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나를 앞질러 지나갔다.


순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회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오른쪽에 줄지어 오는 자전거들 사이로 들어갈 틈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렇게 빽빽한 자전거 도로에서는 자전거끼리 서로 부딪힐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굳이 사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의 행동을 마음속에서 정당화하려 하며 흘려보냈다.


그런데 그 청년과 무슨 인연인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를 치고 앞질러간 그 청년이 좌회전을 하기 위해 멈춰서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미 우회전 타이밍을 놓친 상태였고, 자전거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때, 정말 우연하게, 그의 자전거 앞바퀴와 내 자전거 앞바퀴가 부딪혔다.


절대 고의로 그의 자전거를 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내가 보복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자전거를 거칠게 좌우로 휘두르며 내 자전거를 쳤다. 그리고 나에게 욕을 했다.


“WHAT THE F…!”


나도 이번에는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똑같이 받아쳤다.


“YOU, what the F…!”


그러자 그는 자전거에서 내려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체구가 크지는 않았지만, 젊은 백인 남자가 분노한 채 다가오는 모습에 순간 겁이 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전거를 방패처럼 세운 채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는 다시 소리쳤다.


“WHAT’S YOUR PROBLEM?”


길 한복판, 주변의 자전거들이 모두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설마 어떻게 하겠어?'라는 생각에, 나도 질세라 다시 받아쳤다. 먼저 내 자전거를 치고 간 건 너라고. 너야말로 문제가 뭐냐고.


"What's YOUR problem?!! You hit my bike first and didn't apologize!"


이 말에 이어, 문득 나도 모르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LOVE YOURSELF!!”


나는 한 번 더 크게 말했다.


“LOVE YOURSELF!!”


그리고 덧붙였다.


“I PITY YOU!”


그 말들을 내뱉은 순간,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잃었다.


내가 미친 아시아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전혀 예상치 않은 말을 듣고 분노라는 이름의 최면에서 순간 깨어나 정신을 차린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말이 진정 그의 내면 어딘가를 건드렸을까?


이유야 모르겠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나도 갑작스럽게 당한 이런 폭력적인 상황에 놀란 숨을 가다듬으며 자리를 떠나려는데, 어디선가 한 여성이 소리쳤다.


“Are you OK?”


자전거 위에 앉아 있던 젊은 덴마크 여성이었다.


“I’m fine. Thank you.”


그녀는 다시 물었다.


“Did he hit you?”


나는 대답 했다.


“No… he was just very angry.”


그제야 눈물이 났다.


이게 인종차별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road rage ("도로 위의 분노")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내가 백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난폭하게 행동했을까.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일을 겪고 난 직후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활기가 돌았다. 예전처럼 많이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에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했다.


유럽에서 23년을 살며 크고 작은 차별을 겪어왔지만, 이번에는 그 일이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크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가만히 있는 나에게 분노를 쏟아낸 것은 그의 문제다. 인종이 다른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어딘가가 망가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에게 그런 뜬금없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사건 직후, 우주가 보상이라도 해주듯 유독 그날따라 길거리에서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상점에서도 직원들이 그날 유독 더 친절했다.


그날 저녁 일식집에 가서 남편과 친하게 지내는 부부내외와 저녁을 최고로 기분 좋게 먹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집에 와서 혼자 산책을 나갔다.


밤하늘의 별은 반짝였고, 에어팟에서는 BTS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은 황홀했다. 방탄소년단 컴백 이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며 타지에서의 서러움을 달랜다.






Photo: Erik Kirschbaum / For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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