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宿記(3)

by saryu

선잠에서 깨어 눈을 뜨자 맞은 편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어쩐지 놀라고 굳은 표정으로 미동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자면서 코라도 곯은 것일까. 왜 저런 표정으로 시선도 피하지 않고 쳐다보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놀라고 굳은 표정만은 계속 잊히지 않는다.


언제부터 였을까.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스스럼없이 잠이 들 수 있게 된 것은. 그 짧은 동안 꿈까지 꾸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일과를 마친 퇴근 길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에 눈을 붙이는 것이 나뿐인 것도 아니고, 딱히 눈에 띄는 이상한 행동인 것도 아님에도 맞은 편 그의 눈빛을 본 이후로는 어딘가 황망하고 겸연쩍은 느낌이 들어 새삼 그의 시선을 빌려보니 이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행동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쉽게 잠들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차창 밖 풍경은 신선했고, 호기심 가질 만한 것들이었으며, 잠시 동안이지만 낯선 이들과의 동행은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 긴장감으로 객실 내 공기를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신선한 것도 긴장된 공기도 결국 무던해 지고 익숙해져 결국 주변 시선을 의식 않고 곤히 잠들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비상식도 익숙해지면 상식과 구분하기 힘들어지 듯 부자연스러웠던 행동도 익숙해지면서 결국 자연스럽고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행동이 되어 버리는 것이리라


퇴근길은 특히나 더욱 그렇다. 동떨어진 곳으로 출근하고 동떨어진 일을 하고 이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그 시간, 피곤해 보이지 않는 사람은 회식이라도 마치고 돌아가는 양 동료와 왁자하게 수다를 떠는 취객들 밖에 없다. 모두 저마다의 상태를 넘겨 알고 저마다의 사정을 넘겨 알고 있기에 곤히 잠든 그를, 그녀를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인정하며 함께 달리고 있다.


잠까지 청해가며 매일 곤히 달리고 달려, 가려고 하는 목적지는 어디일까. 객차 내 광고판들은 세상이 당신을 향해 활짝 열려 있고 주먹 불끈 쥐면 모두 다 잡을 수 있다고 당찬 문구들로 약속하지만 약속대로 됐다면 이 객차내의 피곤한 이들은 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일까.


객차 내에서 핸드폰에 코를 박고 유튜브 영상의 추천을 쫓아 쉼 없이 핸드폰 화면을 훑는 사람들. 이런 풍경들은 마치, 남이 만들어 놓은 추천에 선택권을 맡긴 채 자신의 본래 의지와는 동떨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일상과 닮아 있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이 영상 저 영상 쫓으며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을 뿐, 시간을 하나 하나 엮어 자신의 이야기, 서사를 만들지 못하고 사방 조각난 파편 같은, ‘스토리’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며 모진 사회비평가들은 상황을 한탄한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면 남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될 뿐이다’란 이야기를 했던가. 소위, 이런 파편화된 일상을 극복하는 것이 온전히 개인만의 문제였다면 오히려 문제는 단순했을 지도 모른다. 연약한 개인들은 평일 내내 주말만 기다리지만 정작 주말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상태로 주말을 소진해 버린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자꾸 자연스러워지고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원래는 부자연스러웠던 것임을 잊고 자꾸만 그저 잠을 청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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