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버스. 승객은 나를 포함 대여섯 정도. 버스는 큰 바퀴를 거칠게 굴리며 주어진 경로를 묵묵히 달리고 있다. 딱히 듣는 것 없으면서도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은 체, 멍하니 어둠 깔린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문득, 등 뒤 모녀의 대화가 이어폰을 뚫고 들려온다. “우리도 이쪽에 아파트 살 기회 있었어? 있었지?” 중학생쯤 돼 보이는 딸이 묻고 “응“ “그 때 안 산 거 후회하지 않아?” “그렇네”라며 그녀의 엄마가 대답한다. 과연, 강남을 통과하는 버스 안의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인건가?
유명 학군과 학원가가 모여 있는 이 동네는 골목마다 학생들이 넘쳐 난다. 얼마 전 ‘로또 2등 당첨‘ 현수막이 걸려있는 편의점 앞을 지날 때였다. 뒤 따라오던 남학생들의 대화가 어깨 너머로 들려온다. “2등 당첨된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같이 걷던 일행들은 이 질문이 꽤 날카롭게 들렸던 것인지 일제히 “오!“하며 탄성을 질러 댄다. “아니. 금액 차이도 크고, 1등 안돼서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하며 아까의 그 학생이 말을 잇는다. 무슨 헛걱정을 다하는가 싶어 진 나는 등 뒤로 그들을 따돌리며 가던 길을 간다. 그럼에도 대화의 여운이 남아 당첨의 기쁨보다, 한 끗 차로 더 큰 금액을 손에 쥐지 못한 아쉬움과 분함에, 손바닥에 손톱이 깊이 박히도록 주먹 움켜쥐며 눈물을 흘리는 2등 당첨자의 모습이 연상되어 왠지 모를 실소를 흘린다. 역시 강남의 대화는 이런 식인건가?
산책하러 가끔 들르는 선릉/정릉 입구에는 커피숍이 두 군데 정도 있다. 대로변 안팎으로 더 많이 있겠지만 정면으로 나 있는 큰 도로에 바로 눈에 띄는 곳은 일단 두 곳 뿐이다. 그 중 한 곳은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피하기 일쑤고 그 다음에 위치한 두 번째 커피숍에서 종종 시간을 보내곤 한다. 지난 토요일 산책 후에는 웬일인지 늘 붐비던 그 커피숍이 한산하여 처음으로 발을 들여 보았다. 공간이 조금 더 트여 있고 선/정릉 입구에 바로 맞닿아 있다는 입지적 조건 외에는 다른 쪽 커피숍과 비교해서 사람이 더 찾을 만한 장점은 딱히 없어 보였다. 주문을 하러 계산대에 섰다. 벽면에 위치한 직사각형의 크고 길 다란 메뉴판에는 수십 종의 다양한 커피 이름들이 적혀 있었는데 어라 영문으로만 표기 되어 있고 한글이 한 글자도 없다(스타벅스도 한글인데). 그럴 수 있다. 어려운 영어도 아니고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길 건너 대로변의 대기업 비롯 큼직한 업체들 사무실에 다니는 화이트칼라들 일 테니. 과연 강남에서는 이 정도로 힘을 주는 것도 하나의 영업 방식일 수 있겠다. 게 중 어려운 이름의 커피를 무던하고 익숙한 듯 주문했어야 했는데 원래 취향이 단일이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문하고 만 것이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술을 어중간하게 마시고 귀가하다 보면 으레 탄수화물이 당기곤 한다.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 근처 제과점에 들른다. 탄수화물은 물론이고 단 것 또한 당겨서 크림이 듬뿍 든 빵을 몇 종류 골라 계산대로 간다. “아 근데 이 빵은 크림이 너무 듬뿍 이라 살찔 거 같은데”하며 되도 않는 걱정을, 되도 않는 하소연을 빵을 담고 있는 여주인에게 던진다. 재치 있는 답변이 돌아온다. “괜찮아요. 맛있게 먹으면 살 안 찐다고 그랬어요.“ 재치만큼 손도 빠르셔서 내가 웃음을 다 멈추기도 전에 계산서를 들이민다. 호구가 되어도 이런 대화에는 계산이 가볍지 않을 수가 없다.
벤야민이란 철학자는 파리 골목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변화에 밀려난 시대의 흔적, 부산물, 버려진 것, 잊혀져 가는 것들을 수집, 주석, 아카이브 하는 작업을 했다던가. 그리고 그렇게 모아진 것들을 일명 ‘별 자리적 사고’를 통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밤하늘별들 사이에 금 긋듯 이렇게 연결 저렇게 연결 하며 버려지고 쓸모없어 보였던 것들을 의미 있고 새로운 것들로 만드는 ‘구제’ 작업이란 것을 했다던가. 그렇게 어려운 작업을 하려는 것도, 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일상이란 것이 대부분 무의미한 시간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 저런 생각들을 잇다 보면 거기에도 하나의 별 자리 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 때론 이런 생각만으로도 그저 우리가 무한한 무의미의 허공을 걷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의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