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에 얼굴을 박고 곤히 자다 눈을 뜬 것은 거의 해질녘 즈음이었다. 갑자기 차를 왜 멈춰 섰을까 의아해하며 차창 밖을 내다보니 흙먼지 이는 살풍경한 광야가 난데없이 눈에 들어온다. 몇 시간 전 까지만 해도 우리는 ‘천지(天池)’ 맑은 물에 발 담그고 손에 잡힐 듯한 하늘과 드넓은 하늘 연못을 바라보며 영산의 정기를 꿀처럼 빨고 있었다.
사흘 전 저녁식사 자리, 한 달 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홀가분해진 우리는 왁자하게 건배를 나누다 문득, 아무리 반듯한 우리지만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 귀국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분기탱천하여 그대로 백두산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가 다 식기 전의 일이었다.
천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역에 도착한 것은 북경에서 꼬박 이틀 하고도 반나절을 달려온 뒤였다. 녹록한 여정은 아니었다. 침대칸은 애초에 매진이어서 좁은 일반 객실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고, 씻는 것은 고양이 세수가 전부였으며, 차창밖에 보이는 풍경이라곤 여정 절반이상이 온통 옥수수밭 뿐이어서 멍한 눈동자가 녹색이 될 지경이었다. 게다가 급히 몸만 챙겨온 바람에 소일거리가 없어 우리의 긴 여행은 한없이 무료했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구해온 종이에 필사적으로 화투를 그려 넣었고 조커까지 50장을 만들어 패를 돌렸다. 이윽고 이상한 걸 갖고 놀고 있다며 호기심 가득한 중국인들이 우리 곁으로 몰려들었다.
종착역부터는 버스를 이용할 계획이었는데 버스가 따로 없다는 역무원의 안내에 미심쩍었지만 거금을 주고 왕복 차량을 대여했다. 차폭이 넓어 뒷좌석이 널찍한, 상아색의 러시아산 승용차였다. 제법 장거리라 교대로 운전할 요량으로 두 명의 기사가 동승했고, 우리 일행 셋은 그들과 함께 숨 막힐 듯한 원시림을 통과하고 포장, 비포장도로를 오르내리며 다섯 시간 정도 달려 이윽고 천지 턱 밑에 마련된 널찍한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천지까지는 사람이 놓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의 계단이 놓여있었다. 오르는 도중 마주친 거대한 장백폭포가 멀리 까지 시원한 물보라를 던져주지 않았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셀 수없이 오르고 올라 무릎이 꺾이기 직전 마침내 눈앞에 펼쳐진 천지. 드넓은 분화구 가득 푸르고 맑은 담수가 담겨 있었으며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은 그 수면에 안기듯 담겨 있었다. 물밑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고 가까이서 발 담가보니 물은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 혹시라도 괴수를 볼 수 있을까 싶어 멀리 까지 시선을 던져보았으나 구름과 화산지대 검은 토양의 빛을 받은 수면은 은색과 검은 빛의 물결만 조용히 교차할 뿐이었다.
하늘 끝 천지를 보았다는 벅찬 기분은 차에 다시 올라 뒷좌석에 몸을 우겨 넣고 나니, 몰려드는 피곤함 탓에 금방 가라앉았고 우리는 뻗듯 잠이 들었다. 얼마쯤 달렸을까. 차가 멈춰서는 기척이 들었고 두런두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기사들이 이내 밖으로 나오라며 우리를 불러 깨웠다. 도착은 아직인 것 같아 의아해한 채 차 밖으로 불려 나와 졸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살풍경한 광야. 사방 탁 트여 몸 숨길 곳조차 없는 흙먼지 바람 부는 황무지. 바닥에 귀를 대면 선조들이 광복을 위해 달렸던 말발굽 소리라도 들릴 것만 같은 난데없는 광야다. 어째서 그곳에 태연하게도 수박 장수가 있었을까. 좌판에 버젓이 놓인 수박 몇 덩이와 쪼개 놓은 조각들의 분홍 빛깔을 보니 잠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이방인들의 지친 모습이 안쓰럽기라도 했던 걸까. 기사들이 수박을 사서 한 조각씩 건네주었다. 엉겁결에 수박을 받아먹다 문득 일행을 둘러봤다. 이틀 여간 제대로 씻지 못해 땀범벅에 흙먼지 덮인 얼굴, 이리 눌리고 저리 눌려 엉킨 머리카락, 갈아입지 못해 구깃하고 초췌해진 차림새, 그리고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 장시간의 앉은 자세 덕에 땀이 차 짓물러 따꼼 거리는 엉덩이. 그런 몰골로 게걸스럽게 수박을 탐하고 있는 서로를 보자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박을 입에 문채 침 흘리며 한참을 웃고 있는 동안 문득 호연지기라도 가슴을 파고 들었던 것일까. 한 달여간 중국에서 보내온 이러저러한 시간들과 요 며칠 간의 애썼던 시간들이 멀어져가는 흙먼지처럼 가볍고 덧없게 느껴졌고, 피로마저도 바람에 흩어지며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한 기분이 되었다. 이후로는 잠들지 않고 유쾌한 기분에 젖어 돌아왔다. 차창 밖으로 분주히 오가는 백두산 왕복 버스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힘들고 고단했던 경험도 돌이켜보면 그래도 즐거웠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기억 하게하는 뇌의 작용을 당의정(糖衣錠) 혹은 슈가코팅(Sugar Coating)이라고 한다. 그런 경험도 언젠가는 필요한 정보이니 기억해내기 덜 어렵게 뇌가 분주히 사탕을 발라 놓는 것이리라. 준비도 없이 떠나 꽤 고단했던 이 여행이 즐거웠고 좋은 경험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날 광야에서의 수박에 기억의 설탕이 잔뜩 뿌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그 광야가 그립다. 언제든 거스를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었던 무애(無碍)의 시절, 아직 물정 몰라 순진하고 호탕하게 웃어버릴 수 있었던, 바람이 자유롭게 노닐 던 그 곳, 90년대 끝자락의 한여름 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