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차는 많고 자리는 없는데 그 자리 중 하나가 방금 비워진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리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기에 선점하고 점유하는 자가 곧 자리의 주인이 되는 그런 규칙으로 말 그대로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인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빌라 주차장 이야기이다. 여섯 가구가 살고 있는 이 빌라 1층에는 차량 다섯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여섯 가구지만 어째서인지 한 가구는 차를 주차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다섯 대의 차량이 정원을 구성하고 있다. 각 세대는 최소 1년 이상 거주자들로 누가 언제 어떻게 정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암묵적으로 동의 된 자기 자리를 배정 받아 사용하고 있다.
나 역시 전 거주자의 자리를 물려받아 줄곧 한 자리에 주차를 해오고 있었다. 건물 가장 안쪽 자리로 차량 들고 남이 적고 외부 노출도 덜 되어 상대적으로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있을만한 자리로 그렇게 1년 동안 같은 자리에 주차를 해오다 최근에 차를 팔게 되었다. 운행 없이 오래 세워 두기만 한 탓에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았고 실내가 잘 들여다보이지도 않는 지경이 되니 이렇게 어둡고 음울하게 세워 두느니 팔아서 누군가가 달리게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질끈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차장 가장 좋은 자리 하나가 비게 된 것이고 소문(?)은 빠르게 퍼진 듯하다. 며칠 채 되지 않아 그 자리에 종종 다른 호실의 차량이 세워지곤 하더니 이내 낯선 번호의 차량이 내가 쓰던 자리에 수줍게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모종의 확신이 생겼는지 낯선 번호의 차량이 이제는 편하고 깊숙하게 주차를 하고 있다. 간혹 거주자의 지인들이 차를 대곤 하는데 이 차량 역시 거주자 중 누군가 지인의 것인 듯하다. 처음엔 주말에 그리고 이제는 평일에도 자주, 한 때 나의 것, 나의 곳이었던 그곳에 서 있는 이 차량의 헤드라이트와 눈이 마주 친다. 어쩌나? 차 새로 주문했는데…
후회를 먼저 했던가. 변덕을 먼저 부렸던가. 차를 호기롭게 팔아 치우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차를 새로 주문했다. 이쯤 되면 차를 갑자기 팔았던 것은 새 차를 사기 위한 구실 아니었나 하며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주문 예약이 많아 실제 차를 수령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게 된 상황인데, 비우자마자 채워진 저 자리를 보자니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며 이윽고 신경 쓰이는 일이 되어 버렸다.
전체 인구의 1/4이 모여 사는, 높은 밀도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이 메트로시티는 잘 짜여진 만큼 틈이 없다. 빈 자리는 곧 다른 것이 와서 채워버린다. 이는 이 거대한 덩치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데 필요한 필연적 규칙들 중 하나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규칙에 압도되어 당장은 쓰지도 않는 공간 하나 내어줄 마음의 공간마저 생기지 않아 초조해 지는 것은 사뭇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공간’은 부족하고 없을 지언정 마음의 ‘틈’은 확보하고 이따금 내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며 전형적인 도회적 감상에 젖곤 하지만, 오늘도 골목골목까지 줄 지어서 서로 경적을 울려대는 차량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 부질없고 사치스러운 생각 같아지며 마음은 이미 그 행렬에 끼어 함께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