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크 – 말콤 글래드웰

by saryu

폴 해기스 감독의 영화 크래쉬(Crash, 2004)는 편견과 차별에 대해 다룬 7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가 다소 진부하고 전형적이다란 평도 있지만 그만큼 이해하기 쉽고 잘 와 닿는 영화이다. 한편, 마틴 맥도나 감독의 영화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2017)는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 구조이고 전혀 다른 주제의식의 영화이지만 보기에 따라선 이 역시 일면 편견과 차별 그리고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세련되게 담고 있다고 읽을 수 있다.


‘무의식’이란 단어는 전혀 새로운 단어가 아니다. 다만, 블링크에서 쓰이는 ‘무의식’이란 용어와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조금은 그 층위가 다를 것이다. 무의식도 조금 더 나누어 보자면, 주의를 기울여 의식하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전의식과 그 너머의 의식조차 되지 않는 소위 ‘무의식’으로 구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블링크’는 이 ‘전의식’ 그 중에서도 자동화된 사고 체계에 관한 책이라 볼 수 있다. 운전을 처음 익힐 땐 누구나 기어를 1단, 2단…. 또는 D, N, R을 눈으로 확인하며 조작한다. 그러나 익숙해진 이후에는 어떤가. 흔히 몸으로 기억한다고 표현하지만 그런 건 없다. 의식으로 처리하던 동작 체계가 뇌 어디 한구석에 터를 잡고 자동화 단계에 들어선 것이며 이것을 단순히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란 의미에 한정한다면 굳이 ‘무의식’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거 같다.


운전의 예 이외에도 책에서 언급된 미술작품 감별사, 매의 눈을 가진 심리학자들, 베테랑 장군, 음악 매니지먼트 산업의 심미안 번뜩이는 재능 있는 사람들. 이들이 극적으로 보여주는 육감 혹은 직감이라고도 불리는 것, 순발력이라고도 불리며 임기응변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능력은 저자의 설명처럼 수많은 경험이라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찰나의 순간에도 복잡함 속에서 패턴을 찾고,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을 구분해 내어 정제시켜, 빠른 시간 내에 무언가를 처리하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능력이다. 저자는 이 능력에 대한 찬사 못지않게 이 능력이 얼마나 쉽게 또는 자주 오염되고 제한될 수 있는지를 지면에 할애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실제 작가가 독자에게 주목 시키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의식은 어쨌든 이 무의식적 사고 체계의 간섭을 끊임없이 받는 것이며 오히려 단독 의식이란 것이 더 쉽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그중 의식을 간섭하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다르게 보면 빠른 판단을 위한 자동화 사고 체계이다. 장막을 친 오디션은 본질적으로 우리 의식이 무의식의 간섭을 받는다는 차원에선 장막이 없는 상황과 차이가 없다. 즉, 무의식적 편견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편견 대신 다른 감각을 사용하느냐의 문제이다. 저자는 이 예로 편견 지워지는 상황, 조건 지워지는 상황들을 극복한 더 나은 판단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추구해야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이 다른 두 영화 속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 구조는 비슷하다. 편견 또는 혐오하는 타인과 엮이면서 각자의 단점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판단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때 기존의 판단과 이를 뒤집는 눈앞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단단하게 묶여 있던 정신이 매듭이 풀리며, 기존 판단을 회고하듯 조망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 보이는 것은 ‘내가 생각하던 세상과 실제 세상, 그리고 내가 나라고 믿는 자신과 실제 자신’간의 ‘거리’이다. 이 ‘거리’는 의식이 더 이상 의식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경험인 것이고 ‘거리’를 통해 확보되는 것은 우리 정신이 좀 더 유연히 움직일 수 있는 ‘틈’인 것이다. 누구 말대로 우리는 우리 정신을 너무 가까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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