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大地)

Pearl S. Buck 대지를 읽고

by saryu

“나는 완벽하지 않다. (중략…) 그렇지만 나는 삶에서 일정한 무언가를 닻처럼 내리고 있다. (중략…) 나는 기초 위에 서 있고, 더 이상 나아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내 삶을 아주 잘 꾸려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절대 공간을, 적어도 한 번에 한 손가락으로라도 붙들고 있다.” –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패터 회)」 中


그 해 2월 나라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직장에서는 재택근무가 시작됐고 모임은 제한되었으며 영업시간은 단축되었다. 사람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소일거리를 찾기 시작했고 이 때를 타 한 중고거래 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근 마켓에 독서모임을 하자고 글을 올린 것은 4월경이었다.


몇몇 참석자들이 이 모임을 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했다. ‘적적해서’라고 답했던가. 지금 생각해도 적절한 답이었다. 딱히 무슨 치밀한 이유라도 있었겠는가. 하지만 조금 되짚어 보자면, 이 모임에서의 일련의 행위들(책 읽기, 독후감, 감상 공유 등)은 일면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에 여전히 닻을 내리고 있구나’ 하는 감각을 잃지 않게 해주는데,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어찌하였든 ‘적적해서’가 가장 좋은 답이다.


간결한 문체 덕에 일대기가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3부까지 읽겠다는 건 아니다.) 땅을 갈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왕룽은 신에게 매년 풍작을 기원한다. 그러나 신은 변덕스러웠고 일순간 그에게서 땅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앗아갔으며 앗아간 것처럼 그에게 다시 부를 안겨다 준다. 이제 그는 변덕스런 신보다는 땅을 더 숭배하게 되었으며 봉납하듯 땅을 사들인다. 땅은 더욱 넓어 졌고 결실은 날로 더해갔다. 그의 일가도 결실과 함께 남 부러울 정도로 번창하게 된다. 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던 그였지만 부자가 된 이후로 땅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삶도 의미와는 거리가 먼 폐퇴로 접어든다. 하지만 땅에 대한 애정, 그리움은 한결 같았다.


말년의 그가 정신이 희미해져가는 와중에도 “땅은 절대 팔지 말라”했던 당부는 사실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젊은 시절처럼 땅에 직접 쟁기를 갈고 그 대지위에 누워, 심연으로부터 오는 충만함을 느끼는 일은 더 이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대지는 그가 이 모든 역경과 영화에도 불구 그의 정신이 닻을 내린, 끝까지 한 손가락으로라도 붙들고 싶은 ‘절대 공간’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왕룽이 반라로 누워 뿌듯하게 하늘을 바라볼 때 그의 등을 땅이 받쳐주었 듯 정신이 삶을 버텨내기 위해선 무언가 기댈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신은 무언가 매개를 통해서만 현실에 닻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기댄 다기 보다 매개할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정신이 어느 때라도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는 무엇. 종교나 철학일 수도 있고 특정의 신념이거나 가족, 연인 또는 돈일 수도 있다. 딱히 하나만이 아닐 수도 딱히 한 단어로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인식되지 않는 수준에 존재할 수도 있는 그 무엇이 각자의 ‘대지’이자 ‘절대 공간’일 수 있다.


청나라 말 혼돈의 시기, 땅을 근간으로 살았던 한 농부의 이야기는 스스로의 정신이 어디에 닻을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무엇을 대지 삼아 어떤 것을 절대 공간 삼아 삶을 살고 있는지, 독서와 그 감상을 글로 적는 행위로 나마 그 무엇에 닻을 내려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