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갈 때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

by saryu

우주에 갈 때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 –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아 넣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달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그 별이 아름답게 침묵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그 별은 그저 푸른색이 하나로 전체를 감싸고 있을 뿐 그 어떤 선도 그어져 있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국가가 다 무엇이고 우리가 그은 경계들이 다 무엇인가 하는 허탈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지구의 중력은 벗어났을 지언정 지구로부터 이어져온 정신적 중력은 여전히 달 위에서도 작동 하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지구로부터 먼발치에 나와 있어도 그는 소련과 냉전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일원이었다. 정신적 중력은 아무리 우주 밖 멀리 나가 있어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라 부를 만한 시기도 과거가 되어 버린 지금. 인류는 달과 지구 사이에 유인 우주 정거장을 구축했고 수많은 인공위성들을 띄워 놓고 있으며, 발치에 있는 저 멀리 지구로부터 오는 정신적 중력 하에 우주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문득 태양이 식어가는 재난을 맞이한 인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최후의 한 수를 담아 우주로 쏘아 올렸다. 냉전의 시기 그리고 그 이전의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도 인류는 사멸하지 않았고 다시금 그 위에 새로운 것들을 쌓아 올렸지만 이번 위기는 인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이다. 각국만의 정신적 중력 따위 돌아볼 틈이 없다. 전 인류의 지혜를 모아 쏘아 올린 일엽편주는 어떻게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인류를 구하라는 특명이 등에 지워져 있다. 절대 자의도 아니었고, 그저 강제로 우겨 넣어진 인류 구원 미션. 그의 우주선에는 이 필사의 미션을 위해 모처럼 인류가 하나가 되어 지혜를 짜낸, 인류 구원 장비와 정보들이 함께 실려져 있다. 우주만큼 거대한 이 미션 하에 홀로 분투하던 그레이스 앞에 같은 미션을 수행하러 우주에 던져진 또 다른 지적 생명체가 나타난다. 상대를 향해 레이저포를 쏘는 대신 그 둘은 각자의 별을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친다. 둘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서로의 중력을 이해하는데 공을 들이고 서로의 기술을 나누고 머리를 맞댄다. 이 과정 동안 쌓이는 것은 우정이라는 새로운 중력이다. 온갖 고초를 겪고 난 뒤 드디어 실마리를 찾고 각자의 별을 구원할 방법을 찾아내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각자 고향별을 향하며 이별을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그레이스는 마치 영웅본색의 보트 선회 장면처럼 우주선을 돌려 그의 또 다른 인류 로키에게로 배를 향한다.


처참한 전쟁과 냉전의 시간동안 우리가 잃은 것은 우정과 같은 우리가 마땅히 인간성이어야 한다고 여기는 그것이었다. 우주라는 비중력의 공간에서 수많은 첨단장비 보다도 결정적으로 이 둘을 구원한 것은 인간성, 인간의 속성이라 불리는 감정. 즉, 우정, 유머 같은 것이었고 그레이스는 이것을 우주로 갈 때 가지고 갔던 것이다. 이 본연의 장비로 그가 구한 것은 인류가 아닌 인간이라 불리는 것(우리가 자주 잃곤 하는) 자체를 구원했다.

이것이 우리가 우주로 나아갈 때 그리고 서로를 가로막는 중력이 있든 없든 그 어떤 망망대해의 세계로 나아갈 때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라며 작가는 600여 페이지나 달하는 유머를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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