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킬러

by saryu



“나는 선인장도 죽여”

고양이 집사들로부터 고양이를 키워 보라는 말을 들을 때면 하는 대꾸다. 어떻게 하면 선인장을 다 죽게 만들까 싶겠지만 정말이다. 두어 번 선인장을 선물로 받아 키운 적이 있다. 무언가를 키우는 데에는 원체 관심이 없고, 선물이라지만 억지로 받아 키운 터라 너무 무심했던 탓인지 결국엔 선인장이 노랗게 말라 생을 달리해버렸는데, 이런 지경인 내게 하물며 고양이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던 것이, 이사 후 휑한 거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쓸쓸한 기분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건조한 모노톤의 거실에 초록색 식물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선인장의 교훈을 잊은 채 그 이름도 금사철, 은사철이란 식물을 거실에 들이게 된 것이다. ‘금’, ‘은’, ‘사철!’ 나처럼 게으른 이라도 튼튼히 키워낼 수 있을 거 같은, 아니 녀석들이 나를 버텨낼 수 있을 거 같은 기대를 품게 만드는 사철스런 이름 아니겠는가.


이미 꽃집에서 어느 정도 잘 관리 받아 곱게 잎을 올려놓은 금사철은 거실에 들여놓자 맑은 날이면 그 녹색의 잎이 과연 금빛 가까이 빛났고 은사철 역시 잎 가장자리에 두루마기를 두른 듯 은빛을 내며 제법 거실 안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꽃집에서 들은 주의사항 대로 매주 물을 충분히 주고 매일 출근 전 창틀에 올려 두어 햇빛과 바람을 맞을 수 있도록 보살폈다. 추위에도 강하다 하여 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꼬박꼬박 성실하게 창틀에 올려 두어 추위에 당당히 맞서게 해주었고 햇빛을 매일 꼿꼿이 바라보게 해주었다.


1월 중하순 부터였을까. 그러니까 들인지 9개월 정도 지나자 돌연 금사철이고 은사철이고 갑자기 잎 가장자리가 노랗게 마르며 시름시름 빛을 잃고 생기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물을 덜 주어서 그런가 화분 내 흙의 양분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물도 더 자주 주고 주사형 영양액도 계속해서 꽂아 주었지만 상태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3월 어느 날 결국 화분을 들고 병원 찾아가듯 꽃집을 다시 찾아갔다.


분갈이 해달라고 말 꺼냈다가 어째서인지 호되게 혼이 났다. 꽃집 주인은 “빛은 자주 쐬어 주었냐. 바람 잘 드는 곳에 두긴 했냐, 물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충분히 주었냐, 자리 옮기면 얘들도 스트레스 받는데 자리는 일정하게 두고 키운 것이냐” 등등 질책하듯 나무랬다. 혼날 일인가 싶었지만 환자를 데리고 왔으니 주눅이 들어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장광설을 끝내고 “추운데 내놔서 얼었나”라며 그녀가 혼잣말하듯 이야기 할 때 그제야 짚이는 게 있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분갈이는 되레 스트레스 환경을 만들 수 있고, 이제 봄이고 하니 마른 잎들은 저절로 떨어지게 두고 물 많이 주고 영양 공급하면 다시 잘 살아날 거다”며 그녀는 높은 선반에서 식물 영양제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정도 지난 요즘, 다시 창틀에 올려진 두 화분에서 마른 잎들은 하나 둘 떨어지고 새 잎이 속속 나오며 푸른빛을 내고 있긴 한데 이게 영양제 탓인지 그냥 봄이 온 탓인지 사실 구분하지는 못하겠다.


지금도 지인들이 기르는 고양이들을 보면 당장이라도 고양이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얼마 전에는 직접 전문점에 방문해 고양이들을 보고 가격도 알아봤다. 하지만 이내 “선인장도 죽이는 내가” 더하기 “그 튼튼하다는 금사철, 은사철도 나를 못 버티는데”를 떠올리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돌아오곤 한다. 식물에게서 조차 인정을 받지 못한 내가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저 바라보고 쓰다듬어 주는 정도가 내게도 고양이에게도 최선임을 진작에 깨닫고 있다. 함부로 책임지지 않는 것도 하나의 책임이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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