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사소하지만 초능력을 갖고 있다. 제갈량처럼 기우제를 지내지 않고도 비를 내릴 줄 알며(거 세차하기 딱 좋은 날씨구만 하며 세차를 하고 돌아오면 된다.) 물건을 영영 찾지 못할 블랙홀에 넣는 법도 알고 있고(고이 잘 모셔둬야지라는 주문을 외며 보관하면 된다.) 타야 할 버스를 길 건너로 미리 불러낼 줄도 안다.(다만 그 버스는 길 건너기 전에 떠나 버린다.) 어딘가 자신을 놀리는 듯한 능력들이긴 하지만 기 막힌 능력들이니 가히 일상생활 속 사소한 초능력이라 부를 만 하다.
그 외에도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게끔 하는 초능력들도 갖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곤히 잠 들었다가도 목적지 직전에 파밧하고 깨는 감각적이고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단어 또는 의미를 명확히 몰랐던 개념을 막 익히고 나면 TV든 책이든 대화에서든 그 단어, 개념들이 줄줄이 사용되게 하는 능력 또한 갖고 있다. 이전까지 몰라서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의식되기 시작한 것뿐이라고 누군가는 얘기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나 연쇄적이고 동시다발적일 수는 없으므로 다분히 능력 탓이라고 우겨본다. 또한, 유독 4시 44분 44초에 정확하게 시계를 보는 시간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시간에 묻혀 이리 저리 휩쓸리듯 사는 것 같지만 부지불식간에도 특정한 시간에 자신을 정확하게 위치시켜, 점 찍고 살아가는 시간 고정 능력인 것이다. 이 또한 초능력이라고 우겨 본다.
이러한 능력들을 갖고 있는 우리지만 이제는 그 능력이 둔화된 것인가 싶은 능력도 있다. 예를 들면 안면인식 능력 같은 것이 그것이다.
너무 익숙해서 자각하기 힘들 수 있으나 거리, 공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으로 인식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거리로 나서면 일단 수많은 자극들로 넘쳐난다. 차량, 인파, 각종 소음 그리고 시선을 끌기 위해 마구 손을 흔들어대는 다양한 시각적 자극들. 사람을 풍경으로 보는 것은 이런 넘쳐나는 자극들을 버텨내려는 뇌의 선택과 집중 전략의 하나일 수도 있지만 가끔 너무 과해져서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있곤 하다. 부딪히고도 사과 않고 지나가는 것은 사람이 아닌 풍경과 부딪혔기 때문인 것이고,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일단 흠칫 놀라게 되는 것도 풍경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풍경화(化)’로 인해 일종의 안면인식 능력 즉, 사람을 사람으로 알아보는 능력이 둔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퇴근 길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근처에 있던 한 취객이 버스를 내리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실족해 문 칸 계단에 미끄러지며 주저앉아 버렸다. 퇴근길 모난 ‘풍경’이려니 하며 그저 무심해 있던 찰나, 뒤쪽에 있던 청년과 앞쪽의 여성이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와 그를 양옆으로 부축하고 조심스럽게 버스에서 내려주는 것이었다. 순간 내 눈에 비친 그들의 행동은 풍경을 찢는 일종의 초능력과도 같은 것이었고, 그렇게 풍경이 찢겨져 나가자 눈에서 뭔가가 툭 떨어져 나가 바닥에 뒹굴었고 낯 붉어지는 실족감이 찾아왔다.
세차비에 배 아파하고, 먼저 떠난 버스 뒤에 대고 욕지거리를 던지며, 왜 하필 4:44:44냐며 재수없어 하기 일쑤인,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사소한 능력들이지만 사소해서 과소평가하고, 잊고 지내는 능력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과 차량이 가득한 거리 풍경을 바라 보며 사소한 생각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