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후 바뀐 것들
나를 괴롭혔던 원인 모를 증상들이 하나의 병명으로 규정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많은 환자가 있는 병인데 그 이름을 알아내는데 오래 걸렸다는 것은. 운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견딘 끝에 명확한 진단을 받아낸 것이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씻은 듯이 치료할 방법도 없었고, 오히려 할 수 없는 것과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잔뜩 생겼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난 생채기가 알고 나면 갑자기 쓰라린 것처럼, 나는 그렇게 환자가 되었다.
수술 이후, 할 수 있던 것을 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걷는 것부터 조금 늦게까지 깨어 움직이는 것까지 컨디션을 세밀하게 살펴야 했다. 조금만 무리하면 손가락이나 혀끝이 저려왔다.
뇌 안으로 이어 붙인 혈관이 뇌에 피를 공급하고 있을 텐데 내 몸은 오히려 전에 없이 엉망이었다. 뭐가 나아졌는지는 전혀 모르겠고 오히려 걸을 때마다 머리가 쿵쿵 울렸다.
이유를 모를 때는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그저 조금 앉아있으면 나아지겠지 하고 말았다. 그러나 내 병명을 알게 될 때, 뇌졸중, 뇌사, 사망과 같은 단어들이 딸려왔다. 그저 최악의 가능성과 주의할 필요를 설명하기 위한 그런 단어 하나에도 마음이 쓰이던 때였다.
증상의 시작부터 진단까지 10년의 시간 동안 자란 나무에서 드디어 열매가 달렸지만, 나는 그 열매를 따 먹고 불안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편이 좋았을지,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지 모를 것. 나는 가끔 그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내 일이 아니라 어제 자기 전에 본 드라마의 내용이었던가 싶다. 그러나 핸드폰 배경화면에 적어 둔 의료정보나 지갑 속에 들어있는 병원 환자카드처럼 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그런 애매함과 당혹감이 혼재되어 있는 채다. 있어야 할 텐데 없는 것과 없으면 좋을 텐데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다.
퇴원 후 날이 갈수록 기력이 회복되어 가면서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기도 해야 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기 위해 나쁜 것에서는 눈을 돌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차피 주어진 상황이라면 그 안에서 생각해 본다. 나는 아직 아름다운 것을 볼 힘이 남아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