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병을 얻어내다

by 이현선

진단도 치료도 포기하고 알 수 없는 증상들을 그냥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시간에 피리를 불 일도 없고, 언젠가부터는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아무 문제도 없다고 냉소적으로 말하던 의사들이 맞았다는 뜻인 것 같아 분했지만 다행인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 스물한 살인가 두 살,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려고 사람이 빼곡한 버스를 탔다가 눈앞이 흐려지는 일이 있었다. 몇 년 만이지만 전과 같은 증상이란 걸 바로 눈치챈 덕분에 팔다리까지 움직이지 않기 전에 대처할 수 있었다.

그때는 좌석 사이의 복도까지 사람을 세워서 태웠었다. 아마 좁은 공간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산소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호흡의 문제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걸 알아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후에 같은 길을 갈 때는 한참 돌아가더라도 지하철을 탔다.

수시로 문이 여닫히고 여차하면 다음 역에서 내릴 수도 있다는 안심. 반대로 버스로 먼 거리를 갈 일이 생기면 불안해졌다.


그러나 어떤 계기는 참 사소하면서도 강하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서 나와 같은 증상을 설명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매 회마다 한 가지 질병을 정해서 소개하고 정보를 안내하는 연재 칼럼이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생각해봤을까.

생소한 희귀난치병을 소개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했는데, 마침 거기에 적힌 증상들에 시달리면서 살던 사람이 그걸 우연히 읽게 될 거라는 걸.

그렇게 신경외과에 가서 ‘그런 병이 있다던데 증상이 비슷해서요. 어쨌든 저도 비슷한 원인이 아닐까요?’ 하고 MRI를 찍었다. 처음으로 내 말이 무시당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비싼 비용에 실비보험이니 입원료니 알아보느라 번거롭긴 했지만 앓던 이 같은 병을 잡아 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괜찮았다.

검사 다음 날 입원실에서 호출을 받고 1층 진료실로 내려가 ‘말씀하신 병이 맞아요’라는 결과를 들을 때는 마음이 탁 놓였다.


그렇게 10년 만에 병명을 얻어냈다. 이젠 내가 가진 불편과 문제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줄곧 마음속에 있던 숙제가 하나 해결되었다.


그리고 10년간 유예받았던 환자라는 이름으로 사는 생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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