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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Sep 05. 2022

수집, 내 방 안의 행복을 찾아서

맥시멀리즘 수집가의 방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다고는 감히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방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하다. 기념이 되는 것이라서, 추억이 있어서, 그냥 디자인이 예뻐서 등등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들도 한 가득이다.


 물건을 정리하려면 일단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야 할 텐데 내가 하면 그 외에 '필요는 없지만 의미 있는 것'이나 '필요는 없어졌지만 간직하고 싶은 것' 심지어는 '그냥 가지고 있고 싶은 것' 등의 분류가 추가되니 정리는 큰 의미가 없다.


 그나마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실행하는 것이 옷장인데 그마저도 헤져서 못 입지만 아끼던 옷이라든지, 이렇게 발랄한 옷을 입을 때도 있었다니 추억이다-같은 이유로 버리지 못하는 옷을 모아두는 상자가 따로 있으니 이 정도면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 싶을 때도 있다.

 버리는 옷을 100리터 봉투로 두 개 정도 모으면 값을 쳐서 수거해주는 분을 부르는데 매번 어디서 이 많은 옷들이 나왔는지, 그런데도 왜 항상 입을 옷은 없었는지 한숨이 난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 나는 어쩔 수 없는 맥시멀리스트다.



 이것이 이유있는 집착인지에 대해 고민하자면 혹시 어렸을 때 내 물건을 잘 가지지 못했던 탓은 아닌가 의심해볼 때도 있다.

 나는 할머니 손에 남동생과 함께 큰 장녀였다. 무슨 뜻이냐면 내 것은 곧 남동생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내 물건들에게 프라이빗한 공간은 없었고 동생의 말 한마디에 주인이 바뀌었다.


어릴 때는 소풍이든 수학여행이든 어디를 가면 그곳의 안내 팜플렛을 꼭 챙겨왔는데 그렇게 모아둔 것이 손에 다 못 쥘 양이 되었다.

 언젠가 할머니가 관광지 팜플렛 같은 것 좀 가지고 있냐길래 내 수집품을 자랑스럽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도 돌려주지 않아서 말을 꺼냈더니 동생 숙제로 필요하다길래 몇개 주고 나머지는 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필요도 없는 물건인데 그걸 버려야지 왜 돌려주니?"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수집욕이 있는 사람이었나보다. 거기에 '내 물건'이나 '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집착은 추가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의 맥시멀리즘 삶이 간식이나 장난감을 빼앗겼던 탓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희고 깨끗한 호텔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바로 비움의 미학이라고 한다. 물컵이나 수건 같이 꼭 필요한 것만 있고, 그것만 사용하고 정리하면 된다.

 '쿠션 커버를 빨아야하는 데 볼 때마다 신경쓰이는걸' 이라든지 '가습기를 청소해서 치워야 하는데 여름이 다 가도록 그 대로야' 같은 걱정도 없다.


 하지만 나는 여행지의 호텔에서 편안함을 즐기면서도 오늘 낮에 사온 기념 마그넷과 집에 가면 그것을 어디에 장식할 지를 생각한다. 편의점에서 사온 음료수를 마시면서도 유리병이 예쁘네- 하면서 옷으로 감싸 여행가방에 넣는 사람이다.

 깨끗한 호텔에서 느끼는 것은 내 물건으로 가득찬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편안함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비우지 못한다.

 벽에 붙은 예쁜 포장지나 포스터도 간직하는 온갖 손 때 묻고 의미 있는 물건들도 나에게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연히 남겨지는 것들이고, 그런 것들로 가득 찬 내 방은 오래 가꾼 유리 온실처럼 아늑하다.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설레는 것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해요?

 나는 필요로 물건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내 나름대로 '필요에 따라 정리하는 영역'과 '내 마음대로 채우는 영역'을 구분한다.

 옷장에서 나온 옷이 '필요' 영역인 옷장으로 다시 들어갈 옷과, '내 마음대로' 영역인 추억 상자로 들어갈 옷, 그리고 버릴 옷으로 나누어지듯이.

 언제나 내 마음대로 영역은 여백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비우는 게 아니라 예쁘게 채워 넣기 위해 정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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