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선 Sep 10. 2022

우울의 이유

 안 좋은 일이 연달아 벌어지는 날이 있다. 할 일은 많은데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져 나를 불러대고, 평소에 얄밉던 인간은 이런 날 더 깐족거려서 오늘 나의 불행 할당량이 대체 얼마인지 가늠도 안 간다.

 어제가 딱 그런 날이었고 그 불행한 사건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지쳐 녹아내려서 반은 액체 상태였다.


 재빨리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면 달려오는 고양이의 포실포실한 털을 쓰다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겨우 사람의 형태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대로 한참을 바닥에 앉아서 뭉개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갈 수 있다.

 샤워기 아래에서 뜨거운 물을 맞고 있으면 내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오물신이 된 것 같다. 질척하고 부정적인 마음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래도 온천에 찾아온 오물신이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강의 신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상상하면 내 불행이 조금 씻겨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하루 종일 시달린 화와 짜증이 좀 가라앉고 나면 우울이 찾아온다. 오늘은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었는지!

 우울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가라앉지 않는 날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주절주절 털어놓기도 하고 끝없이 긴 일기를 쓰기도 한다.


 조목조목 내가 오늘 겪은 형편없는 일들을 늘어놓고 그것들이 어떻게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샌가 내 우울을 변호하고 있다.

 '이것 봐, 이렇게나 힘들었어. 내가 우울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내가 약한 게 아니야. 나에게 불행이 너무 많은 거야!'


 슬픈 일이다. 우울하고 싶지 않은데도 이유까지 끌어모아가며 우울을 털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이렇게나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우울하다는 것이.

 그러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마음속에 사는 티끌만 한 이성적 면모를 호출해야 한다.


-오늘도 누구에게 감정을 떠넘기려고 하지는 않았어? 남을 흉보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고?

-그게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야? 놓아버리면 지나가는 일인데 붙잡고 화내고 있지는 않아?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늘의 형편없는 일들도 어떻게든 지나갔다. 남은 골치 아픈 업무는 내일 출근해서 해결해야 하지만 지금 고민해봐야 소용없고,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도 사실 내 인생에 하등 의미가 없다. 내 안에 있지 않은 일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그것을 구태여 부여잡고 분노하고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은 나다. 나에게는 '무시'나 '잊어버리기' 같은 무기가 분명 있는데 내가 '아, 힘들어라'하고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살펴볼수록 이유는 하나하나 걷어지고 이유 없는 우울만이 남는다.

 깃털을 모아 둥지를 짓듯이, 보드라운 담요로 침대를 감싸듯이 우울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이유로 무장하고 있다. 여기 있다고, 알아봐 달라고.


 그럼에도 나는 머지않아 또 우울해지기를 반복할 것도 안다. 어제처럼 지치는 날일 것이고 나는 또 주절주절 이유를 대며 우울에 젖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위를 손에 쥔 아이를 어르듯이 우울을 달래 손에 쥔 불행의 이유를 빼앗아야 한다.

 이유를 내려놓고 불행도 내려놓자. 이 시간에 산책이라도 하고, 청소라도 하자. 이번 주말에 볕 좋은 곳으로 외출할 계획이라도 세우는 편이 훨씬 좋아.

매거진의 이전글 애매함을 애매하게 사랑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