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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Aug 27. 2023

진주목걸이, 취향을 찾아서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주말 외출 준비를 하려고 옷장을 열었다가 또 고민에 빠진다. 옷장 안에는 업무상 필요한 자리나 경조사에 입고 가기 위해 갖춰 둔 정장과 단정한 원피스 몇 벌이 있지만 내 나이에 맞게 그런 옷들을 더 늘려야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의무감으로 사들인 스커트와 블라우스가 옷장 안에서 모셔져만 있다가 슬쩍 밀려 나온다.


 나는 항상 편한 옷이 좋아서 운동화나 컨버스를 즐겨 신고 겉옷도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것을 좋아한다. 겨울엔 단단하게 각이 잡힌 패딩도 싫어서 충분히 흐늘흐늘거리는 것을 고르느라 한번 사려면 오래도 걸렸다. 그런데 요즘은 부쩍 내 취향이 아닌 것에 눈길을 보내게 된다. 슬슬 립스틱이라도 바르지 않으면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것 같고, 편하게 들던 미색 에코백이 왠지 후줄근해 보이나 싶은 그런 위기감 탓도 있다.


 몇십 년은 지나야 눈이 갈 줄 알았던 진주가 문득 우아해 보이기도 한다. 손가락 위의 은반지가 톡 도드라져 보이며 내 피부를 칙칙해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 점점 은보다는 금을 찾게 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나이에 맞게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혼란한 마음이 아직 나잇값은 못한다는 방증인 듯도 싶지만 좀 초조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이정재 배우가 핑크색 재킷에 진주목걸이를 걸고 나온 모습을 보았다.

 물론 남자가 알이 큰 진주목걸이를 한 차림은 파격적이고 그것을 누군가는 싫어할 것도 분명하다. 그래도 그는 '하지만 하고 싶었다.' 라고 말한다.


 진주목걸이를 하는 사람이나 나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진주목걸이를 한 남자가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하듯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안될 일은 아니고 내 취향을 발견하고 다듬어 나가는 것은 즐거운 일일 뿐이다.


 휴일의 가벼운 외출을 준비하는 내가 있으면 회사로 출근하는 나도 있다. 자리에 맞게 우아한 차림을 한 모습도 필요하지만 편한 후드티나 아끼던 은반지도 여전히 좋다.

 나이가 정하는 차림을 고민하는 것만큼 내 취향의 것들도 나에게 어울리게 소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TPO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청바지가 어울리는 할머니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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