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내가 가장 의욕적이었던 때의 이야기다. 나는 내가 맡은 책임들과 넘치는 일거리들 사이에서 바쁘게 지내면서도 그 열정과 성취의 기쁨에 젖어있었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난 후 같은 기분 좋은 나른함이 좋았다.
미열 같은 피로감을 어깨에 얹고 살았지만 그게 오히려 훈장 같던 때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일본 온천 여행 광고를 본 것이 발단이었다. 잔뜩 지친 나.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온천.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 호사스러움과 여유로움 사이의 여행에서 기대했던 것들 중 하나는 중심지에서 전철로 20분 정도 가면 있는 작은 동네에 있는 절이었다. 그곳에 커다란 청동 열반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곳이다.
날씨도 좋았고 한적한 동네와 넓은 절 안에는 여유가 넘쳤다. 좁은 길 사이를 따라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 그토록 바랐던 부처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반가사유상이나 열반상에는 다른 부처님보다 더 평화로운 느낌이 있어 좋다.
이 절이 유명한 것은 부처님의 40m가 넘는 키 만이 아니다. 이 절의 주지 스님이 무려 두 번이나 복권에 당첨이 되었다고 한다. 복권 당첨의 기운이 흐르는 명소인 것이다.
부처님의 발바닥에는 각각 의미가 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 문양이 양각으로 볼록 튀어나온 위에 동전을 올려놓아서 한 번에 붙으면 운이 좋다고 한다. 무슨 운이냐면 역시 복권에 당첨될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
부처님의 몸 안은 건물처럼 되어 있어 요금을 내면 그 안까지 들어갈 수 있다기에 기꺼이 돈을 냈다.
입구에서 안내받은 대로 들어가자마자 좁고 긴 복도에 늘어선 88개의 탱화에 합장배를 했다. 벽을 따라 족자에 걸려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88개의 절을 순례한 것과 같다고 한다.
절에는 이런 것들이 왕왕 있다. 티베트 불교에는 마니차라고 해서 세로로 선 원통 모양으로 생긴 것이 있다. 가운데에 축이 있어서 팽이처럼 돌아가는데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고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한 것이다.
순례의 중간쯤에 잠시 합장배를 멈추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부처님의 사리를 참배할 수 있다.
작고 어두운 공간 한편에 유리 너머로 사리가 모셔져 있었다. 먼발치에서 본 부처님 사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둡고 조용한 공간을 보자 생소함과 약간의 경외심이 들었다.
한 사람씩 들어와 참배하고 소원을 빌라고 했는데 생각해 둔 소원 같은 게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곤란한 일이었다.
복권 명소 사찰. 순례한 것으로 쳐주는 융통성. 부처님 사리를 마주한 나는 아주 짧은 고민 끝에 마음속으로 외쳤다.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나라는 인간은 너무도 개인적이고 세속적이다. 부처님,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게 내 내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바람이었다.
세계평화도 인류의 행복도 빌지 못한 나에게 앞에서 안내해 주시던 분이 다가와 뭔가를 슥 내밀었다. 금속 재질로 된 얇은 카드 모양의 부적이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금색의 부적이 반짝 빛났다.
“여기에서밖에 안 파는 부적이에요. 여기서 나가면 살 수 없어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여기에서밖에 팔지 않아요.”
결국 부처님 몸속의 부처님 사리 앞에서 지갑을 꺼냈다.
나는 한국인 중 많은 사람이 자처한다는 '불교에 가까운 무교인'으로서 종교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한다(애초에 여긴 일본 절이지만 어쨌든). 너무 고고한 건 그것대로 재미없다고.
절을 나와 목조건물로 된 시골역의 승강장에 앉아 생각한다. 매일 오늘처럼 여유가 가득하다면 좋을 텐데. 아까 매일 그렇게 살고 싶다고 소원을 말했으면 좋았을걸.
나는 그 황금빛 부적을 가끔 여행 기념품들 사이에서 꺼내본다.
역시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아니 사실은, 아무래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