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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Aug 31. 2023

후쿠오카. 사실은 아무래도 좋아요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내가 가장 의욕적이었던 때의 이야기다. 나는 내가 맡은 책임들과 넘치는 일거리들 사이에서 바쁘게 지내면서도 그 열정과 성취의 기쁨에 젖어있었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난 후 같은 기분 좋은 나른함이 좋았다.

 미열 같은 피로감을 어깨에 얹고 살았지만 그게 오히려 훈장 같던 때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일본 온천 여행 광고를 본 것이 발단이었다. 잔뜩 지친 나.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온천.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 호사스러움과 여유로움 사이의 여행에서 기대했던 것들 중 하나는 시내의 중심지에서 전철로 20분 정도 가면 있는 작은 동네에 있는 절이었다. 그곳에 커다란 청동 열반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곳이다.


 날씨도 좋았고 한적한 동네와 넓은 절 안에는 여유가 넘쳤다. 좁은 길 사이를 따라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 그토록 바랐던 부처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반가사유상이나 열반상에는 다른 부처님보다 더 평화로운 느낌이 있어 좋다.


 이 절이 유명한 것은 부처님의 40m가 넘는 키 만이 아니다. 이 절의 주지 스님이 무려 두 번이나 복권에 당첨이 되었다고 한다. 복권 당첨의 기운이 흐르는 명소인 것이다.

 부처님의 발바닥에는 각각 의미가 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 문양이 양각으로 볼록 튀어나온 위에 동전을 올려놓아서 한 번에 붙으면 운이 좋다고 한다. 무슨 운이냐면 역시 복권에 당첨될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


아래 쪽에 보이는 동그라미가 동전들


 부처님의 몸 안은 건물처럼 되어 있어 요금을 내면 그 안까지 들어갈 수 있다기에 기꺼이 돈을 냈다.

 입구에서 안내받은 대로 들어가자마자 좁고 긴 복도에 늘어선 88개의 탱화에 합장배를 했다. 이것이 88개의 절을 순례한 것과 같다고 한다.

 절에는 이런 것들이 왕왕 있다. 티베트 불교에는 마니차라고 세로로 선 원통 모양으로 생긴 것이 있다. 가운데에 축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팽이처럼 돌아가는데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고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한 것이다.

 한국에선 흔치 않지만 윤장대라고 한다. 예천 용문사나 서울 도선사에 있는데 이건 아주 커다란 기둥 모양이다.


 순례의 중간쯤에 잠시 합장배를 멈추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부처님의 사리를 참배할 수 있다.

 작고 어두운 공간 한편에 유리 너머로 사리가 모셔져 있었다. 먼발치에서 본 부처님 사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둡고 조용한 공간이 주는 생소함과 약간의 경외심이 있었다.


 한 사람씩 들어와 참배하고 소원을 빌라고 했는데 생각해 둔 소원 같은 게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곤란한 일이었다.

 복권 명소 사찰. 순례한 것으로 쳐주는 융통성. 부처님 사리를 마주한 나는 아주 짧은 고민 끝에 마음속으로 외쳤다.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나라는 인간은 어쩜 이렇게 개인적이고 세속적인지. 부처님,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게 내 내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바람이었다.

 세계평화도 인류의 행복도 빌지 못한 나에게 앞에서 안내해 주시던 분이 다가와 뭔가를 슥 내밀었다. 금속 재질로 된 얇은 카드 모양의 부적이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금색의 부적이 반짝 빛났다.

 “여기에서밖에 안 파는 부적이에요. 여기서 나가면 살 수 없어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여기에서밖에 팔지 않아요.”

 결국 나는 부처님 몸속의 부처님 사리 앞에서 지갑을 꺼냈다.

 나는 한국인 중 많은 사람이 자처한다는 '불교에 가까운 무교인'으로서 종교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한다(애초에 여긴 일본 절이지만 어쨌든). 너무 고고한 건 그것대로 재미없다고.


 절을 나와 목조건물로 된 시골역의 승강장에 앉아 생각한다. 매일 오늘처럼 여유가 가득하다면 좋을 텐데. 아까 매일 그렇게 살고 싶다고 소원을 말했으면 좋았을걸.



 나는 그 부적을 가끔 여행 기념품들 사이에서 꺼내 전등에 비춰 번쩍이는 황금빛을 보며 생각한다.

 역시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아니 사실은, 아무래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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