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은 전형적인 관광지였다. 유명한 온천 휴양지니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한국인으로 가득했다. 긴린코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동안에도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유명 관광지일수록 혼자 온 사람은 쭈뼛해진다.
내가 어디 서 있기만 하면 지나가던 한국인 가족들이 ‘저기 봐, 일본 사람들은 저기서 저렇게 기도를 한다고.’ 하는 식으로 소곤거렸다.
‘저도 한국인인데요. 저도 신기해서 구경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혼자 여행의 장점은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에도 굴하지 않고 유후인의 메인 거리를 모두 돌아보고 공중전화로 예약한 료칸에 전화를 걸어 픽업 차도 불렀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객실에 딸린 온천에 들어앉아 신선놀음을 하고 반들반들해진 상태로 다시 료칸에서 태워주는 타를 타고 유후인역으로 나왔다. 조석으로 대접받은 그림책처럼 예쁜 가이세키 요리로 몸도 마음도 살찌웠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날씨도 맑아 유후다케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걷는다. 어제와 달리 맑은 날씨에 활기가 넘치는 거리.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제 다 본 것 같은데 이제 뭐 하지?
일단 유명하다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가게 바깥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포근한 큐슈의 겨울 날씨. 따끈한 햇살이 기분 좋아서 굳이 눈을 찡그리며 해를 한 번 쳐다보다가 해가 올라오는 쪽으로 쭉 뻗은 둑방길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걸어가 볼까.
관광객이 넘치는 듯 넘실넘실 걸어가는 길에서 골목으로 몇 발짝 들어섰을 뿐인데 한국인은 아무도 없고 멀리 갈수록 간간이 동네 어르신들만 마주친다. 저분들도 나를 근처 사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외국인 관광객이 여기까지 들어오네 할까. 체육공원인 것 같은 공터 옆을 걸어가고 있으니 발 밑으로 조그만 게이트볼 공이 데구르 굴러와서 공의 주인인 할아버지한테로 다시 굴려서 보냈다. 꾸벅 고개 인사를 나누고 다시 걷는다.
데구르 굴러왔다 그렇게 데구르 굴러 떠나가는 시간들.
한적한 곳에 있는 절에도 들르고 논 옆에 난 길로 그냥 막 걷기도 한다. 2월의 유후인에는 여기저기 동백꽃이 피어있다. 우리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꽃이라 동백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그럼 화분을 하나 사다 두라고, 베란다에 두면 우리 동네의 날씨도 버틸 것이고 너무 크지 않게 키워도 꽃을 볼 수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만나기 어려워서 반가운 게 동백이다. 겨울 추위가 물러갈 때쯤 먼 길을 나서야 만날 수 있기에 더 소중해서 동백은 이파리만 봐도 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