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방음은 전혀 안 되어서 몇 집 건너의 이웃이 귀가하는 소리까지 다 들리고 전등 스위치나 콘센트도 절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세면대와 변기마저 작은 욕실은 너무 좁아서 샤워기를 벽에 건 상태로 물을 틀 수도 없고 아차 하면 벽에 달린 수건걸이에 등을 부딪힌다. 동네엔 이상하리만치 까마귀가 많아서 조만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눈여겨보고 있다.
처음엔 ’뭐 일본 여행 온 것 같고 좋네.’ 하면서 에어비앤비로 묵었던 일본식 주택의 2층 방을 떠올리기도 했다. 시골 동네의 언덕배기 위에 있는 아파트라 단지 뒤쪽을 향해 난 베란다 통창으로는 산자락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해가 드는 것도 좋다.
살던 동네에서는 차로 15분 정도. 멀지 않은 곳이다. 전에도 자주 와본 적 있는 동네기도 하다. 그럼에도 천천히 걷다 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법이다. 매일 차로 다니던 출근길도 휴일에 천천히 걷노라면 생경하듯이. 아침해에 초록색으로 일어나던 뒷산이 초저녁 노을에는 붉은빛을 반사해 아파트 복도의 낡은 콘크리트벽마저 조금 따스해 보이듯이.
종종 집에서 잠자듯이 죽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 지금은 남의 집이라 임대인에게 민폐가 되니 좀 곤란하겠지. 그런데도 여기가 내 마지막 거처여도 좋겠다는 생각은 자꾸 든다. 새벽까지 쿵쿵거리는 윗집의 생활 소음에 시달리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혼자라도 고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 아침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층에 가려다 1충에서 내렸다. 위층에 사는 할머니의 산책 동무 예쁜이가 먼저 타고 있었던 탓이다. 조그만 게 만날 때마다 어찌나 크게 짖어대는지 오늘도 쫓겨나듯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예쁜이가 먼저 현관을 나서는 동안 옆에 찌그러져있었다.
그래도 모든 게 나쁘지 않다. 우체국이나 마트가 가까운 것도. 동네에 책 읽기 좋은 널찍한 카페가 있는 것도. 혼자서도 살만한 것도. 아직까지 이웃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아파트라는 것도.
여전히 여행 온 기분이 든다.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빨래를 해서 널고 바닥도 싹싹 쓸었는데도 그렇다. 집을 나설 때 동향 통창으로 드는 햇살에 비치는 방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인 것처럼, 또는 내 영혼이 영원히 머물 곳인 것처럼. 도무지 알 수 없게 보인다.
하지만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으로 집을 나서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익숙해졌다고, 다 안다고 믿을 때 공간은 죽는다. 새롭게 볼 때 공간이 일어서서 다가온다. 그런 곳에 발을 딛고 걸어야 내가 산다.